고립된 외로운 섬이 되지 않기를...
최근 뉴스를 통해 접했던 두 개의 사건은 다시 생각해도 머릿속을 하얗고 멍해지게 한다. 20대의 한 여자는 계획적으로 한 여자에게 접근해 무참히 살해하고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길을 걸었고, 30대의 한 남자는 자신보다 젊은 무고한 한 남자를 해하고 태연하게 경찰 앞에서 범행 동기를 이야기했다. 어리석고 악한 두 사람의 얼굴이 공개되었을 때 나는 범죄자의 얼굴을 찾을 수 없었다. 평범해 보이는 얼굴,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무서운 생각과 감정들을 마주하는 일이 더 힘들었다. 황망하고 무력했다. 한없이 두렵고 마음이 아팠다.
이 두 사람을 이해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 상황을 이해한들 그들이 행한 흉악한 범죄가 없던 것이 될 수 없고, 유명을 달리한 아름답고 안타까운 두 생명이 다시 호흡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대상이 한 명도 없었을지 모르겠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인정하고 좋게만 보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지 모르겠다는 것.
내가 힘들었던 순간에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던 한 사람의 조언이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고립을 선택하지 마세요.
고독할 수는 있지만,
고립되는 건 안돼요.
관계를 다 놓아버리면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져 버리기도 쉽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준 말이다. 혼자 있고 싶은 시간들은 분명히 있고, 고독을 즐길 필요가 있는 때도 있다. 하지만, 고립된 외로운 섬이 되어버리는 건 상처의 회복과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내 진료실을 자주 찾는 뽀얗고 예쁜 중학생 여자아이가 있었다. 말투는 좀 느렸고, 두 눈에 부끄러움과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상황을 전부 알 수는 없으나, 어머니와는 따로 지내는 것 같았고,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이는 어머니 혹은 언니와 함께 나를 찾아 오곤 했었다. 두 달 동안 8회 이상의 진료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올 때마다 증상은 달랐지만, 주로 두통이나 복통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통증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이는 늘 진료확인서가 필요하다고 했고, 거의 매번 학교에 가지 않았거나 조퇴했다고 말했다. 학교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던 거다.
세 번째 만남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가 혼자 진료실에 들어온 날, 전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한 사람을 지목하여 말했고, 그 아이로 인해서 학교에 가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이후에 진료를 볼 때에도 아이는 매번 그 아이 때문에 속상하다고 이야기했고, 함께 온 언니와 엄마도 이미 그 일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어떤 날은 아이가 겪은 일을 듣고 나서, 밀치고 때리고 자꾸 따라와 괴롭히는 다른 아이가 잘못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말해주었다. 많이 힘들겠다고 공감해 주었다. 아이의 증상의 어느 정도는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 같았다. 아이는 이 일에 대해서 학교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학교 상담 선생님과도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날들이 지속되어 힘들다고 했다.
몇 주 전 아이가 내 진료실에 들어오던 날, 나는 아이와 보호자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권유했다. 보호자는 아이가 이전에 이미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고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가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에게는 힘든 마음을 마음껏 쏟아놓고 구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언을 듣는 일이 도움이 될 테니 다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언제라도 몸이 아프면 나에게 오라고 이야기했다. 그날도 나는 학교 제출용 진료확인서를 발급해 주었다.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했던 한 여자아이가 왜 이 뉴스들을 보고 나서 떠올랐을까. 아마도 상대방의 나쁜 동기와 마음으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는 이 아이의 편에 내가 서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답답하고 힘든 상황 가운데 그 아이가 '고립된 섬'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로부터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단 한 명이어도 좋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살아가다가 만나는 힘겨운 역경을 이겨나갈 힘을 얻는다. 오롯이 혼자서 그러한 동력까지 이끌어낼 수도 있겠지만, 외로운 일이다. 기쁨이 없이 마음이 소진되기 쉬운 일이다.
당신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아주는 일,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주는 눈빛이 그 어떤 말보다 당신에게 큰 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무너지고 약해지다가 결국엔 악해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를 때, 당신을 끝까지 좋게 보아줄 한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고른 숨을 내쉰다면 좋겠다. 마지막처럼 생각되는 순간에, 그냥 마지막으로 다 끝내버리고 싶은 순간에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