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톤 환상의 색채 속으로
봄바람이 가득 들어서
마음을 살랑거리게 하는 것들에 시선이 갑니다.
여린 생명들, 여린 색채들, 여린 선과 여린 마음들...
오늘은 혼자 <마리 로랑생 전>에 다녀왔어요.
평일 오전 시간에도 관람객은 정말 많더군요.
조금 한적할 시간을 골랐는데,
내가 좋게 여기는 그 시간은
다른 분들도 좋게 여겨지는 걸까요?
대부분이 여성들이었지요.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화가 마리 로랑생의 그림을 보러 온,
나이를 불문하고 오손도손 모여든 관람객들 틈에서
저도 느리게 걸으며 그녀의 그림 속에서 산책을 했어요.
두 시간 동안 내내 그녀의 인생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생아로서 시작된 인생은 아마 쉽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에게 주신 재능은 그녀를 위대한 화가로 빚어갔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빛이 있지요.
그녀는 회색빛깔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어요.
하지만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녀 안의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색깔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지요.
파리의 '세탁선'에서의 다른 화가들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특별한 자극이고
그녀의 화가로서의 삶에 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피카소를 만난 것도 그 모임을 통해서였고
기욤 아폴리네르와의 인연도 그 모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지 모르지요.
그녀의 작품은 사실 그녀의 인생이 아니라
그 작품 자체로 말합니다.
기욤과의 헤어짐, 세계대전, 남편과의 이혼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와 독일,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스페인에서 살았던 이방인으로써의 삶은
그녀에게 회색빛과 격자무늬의 갑갑함, 그리고 무력함을 느끼게 했겠지만,
다시 돌아온 파리에서 그녀의 색깔은 드디어
꽁꽁 싸매어두었던 응어리가 실타래처럼 풀리듯
그렇게 그림 속 미소 띤 얼굴과 함께
파스텔톤 구름처럼 피어오릅니다.
새까맣고 동그란 또렷한 눈망울,
베이비핑크 컬러의 볼 터치를 한 듯 뽀송한 얼굴의 살결,
날렵한 콧날, 그러나 부드러운 인상,
얇지만 강인해 보이는 목선을 따라 내려가면
우아하고 세련된 드레스,
그리고 전체 그림을 감싸는 따뜻하면서도 밝고 희망찬 느낌.
그것이 그녀의 절정기 그림의 느낌이었어요.
어떤 그림을 보면서는
핑크빛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구나.
회색이 섞인 핑크, 붉은색이 더 섞인 핑크, 흰색이 섞인 투명에 가까운 핑크,
초록색이나 파란색이 섞인 핑크 등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배경 속의 핑크빛 바다에 풍덩 빠져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20세기 초, 최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그들의 감성을 표현하며 살았던
파리의 벨에포크 시절의 작가들,
그중 단연 돋보였던 마리 로랑생.
그녀의 그림은
이 전시의 부제처럼,
색채의 황홀을 경험하게 합니다.
자신의 색깔을 찾아
그것으로 최선의 작품들을 만들었던
그녀의 정성과 열정이 느껴졌던 시간이었어요.
하얀 옷에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사랑했던 남자 기욤의 편지들과 함께
이 세상의 마지막을 장식한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우리에게까지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출구로 나와 아트숍에서 도록도 품절, 대부분의 상품들도 품절인 것을 보는 순간,
이렇게 늦게 온 내 탓보다는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린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나고 나왔다는 뿌듯함에
마음이 더 기뻤지요.
코스터 세트와 엽서 한 장,
그리고 아이 방에 걸면 좋을 것 같아 캔버스 액자를 하나 사 왔어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두 딸들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전시도 곧 끝이 나요.ㅠㅠ
아직 못 가보신 분들은 서두르셔야 해요.
The Well-beloved
혼자만의 시간은 늘 왜 이리 빨리 흘러가는지 모르겠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