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온을 갈망한 예술가, 마티스를 만나다
참 예쁜 책이다. 소장하고 싶을 만큼 일러스트가 아름다운 책이다. 비록 그의 주요 작품 중 몇몇 가지가 빠져 있어서 아쉬울지라도 오래 두고 꺼내보고 싶은 책이다. 하드커버의 느낌이 좋고, 예술적인 감성을 듬뿍 담은 아그네스 드코러셀의 그림은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This is Matisse>, 얼마 후면 니스에서 만나게 될 그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기분 좋은 설렘을 갖게 해준 책이다.
나에게 마티스는 교과서에서 본 것 같은 <붉은 방>이나 <춤>,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보다 <왕의 슬픔>, <라 제르브>, <이카루스>로 더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단순하지만, 강렬하고 살아움직이는 것 같은 그의 그림은 역동성을 내포한다. 그렇기에 프리처드가 마티스의 마지막 작품들에 대해 쓴 글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마티스의 그림들은 무엇처럼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림의 에너지와, 그림이 형용하는 것과 가치,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림 안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온전해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의 움직임을 자극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지만,
동작의 기운이 흐르는 방향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앙리 마티스는 '균형과 순수, 그리고 평온한 예술, 즉 좋은 안락의자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예술'을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어떤 평온함을 찾기보다 뒤틀리고 움직이고 금세 변해버릴 것 같은 그림에 오히려 숨을 죽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아버지와의 내내 껄끄럽고 불편했던 관계가 어쩌면 그에게 그런 욕구를 강하게 불러일으켰는지 모른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야만 마음이 정리가 되고 신선한 기운으로 채워지는 그의 갈망이 평온한 예술에 갈증을 느끼게 했는지 모르겠다.
마티스는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보엥에서 종묘 가게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순탄하지 않아서 아버지는 그에게 폭력을 가하기 일쑤였고, 그는 아버지의 폭력을 절대 잊지 않았으며 아버지와의 비틀어진 관계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 당시, 마티스는 자주 도망치는 꿈을 꾸었고, 이러한 자유와 해방에의 갈망이 이후 그의 작업에서 '날아오르는 새'와 '물고기'를 통해 표현되곤 했다. 마티스의 미술적 재능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도망가고 싶은 세계인 보엥에서 마티스는 다채로운 색채의 세계를 만난다. 보엥에서 사고 팔리던 옷감들은 그에게 시각적인 자극을 주었고, 이후 마티스는 '장식적인 것'을 예술이라 생각했다. 이런 그의 생각은 <붉은 방>과 <파란 식탁보와 정물>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파리에서 산 낡은 투알 드 주이(toile de jouy)천은 그의 작품 속 주된 소재가 되어 표현되었다. 또한 마티스는 사람이나 물건의 움직임과 형태를 따라 하기를 좋아했으며, 이를 통해 그 특징을 잡아내는 연습을 많이 하였다.
마티스는 법을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시험에도 합격했으나, 물감을 선물 받는 순간 그것이 운명임을 느끼고 파리로 가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카미유 조블로와 결혼했으나, 파경을 맞고 아멜리와 1898년에 재혼한다. 그는 피카소에 비해 가정적이고 여성편력이 덜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멜리와도 결국은 외도 문제로 나중에 파혼하게 된다.
마티스는 야수파의 창시자로, 강렬하고 대담한 색채를 쓰며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색채와 형태를 자유롭게 사용하였다. 이런 그의 작품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춤>이 있겠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색깔과 그림 속의 사람들이 모두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나체인 다섯 사람은 각각 특유의 몸짓을 하며 춤을 추고 있다. 모두 자기 흥에 취한 모습인데다가 잡은 손이 풀어지는 것까지도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어떤 리듬이 그림 속 사람들을 리드하고 그들은 그 리듬에 마음을 온통 빼앗긴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과 내 시선도 춤을 춘다. '마티스의 선은 움직이는 것 같다.'
그에게 여행은 복잡한 삶의 탈출구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후원자 시츄킨으로부터 <춤>과 <음악>을 사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올가라는 여자와의 외도 문제로 아멜리를 달래려 할 때에도 그는 여행을 떠났다. 스페인에서 그는 이슬람 미술과 비잔틴 양식에 빠져서 매혹적인 그 외관과 패턴을 쉼 없이 찾아다녔고, 특히 알람브라에서 놀라운 예술적 감정을 경험했다.
1917년부터 마티스는 남프랑스 니스(Nice)에서 지냈다. 말년에 그는 종이 오리기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 작업을 매우 즐거워했고,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그림은 단순화되었지만, 더 평온해졌고 자유로워졌다. 군더더기 없는 심플함으로 완성된 그의 작품은 선명했고, 더 강렬해졌다.
나는 색에 바로 '그렸다'...
그리기와 칠하기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방스의 로제르 예배당에 가보려고 한다. 그가 '내 삶의 최고의 업적'이라고 하는 그곳에서 마티스의 77세와 만나려고 한다. 예배당 디자인과 스테인드글라스, 타일 그림과 천까지 모두 그의 감각과 손길을 거쳤다니 그곳은 그의 체취가 깊이 배인 곳일 게다.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미사 시간뿐이어서 시간을 잘 맞출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해도 방스의 아름다움을 보며, 그곳을 거닐었을 그와 만나고 싶다. 공기 속에서도 어쩌면 자유가 느껴질지 모르는 그곳에서, 자유를 추구하고 봄날의 밝은 즐거움을 담기를 간절히 원했고, 안락의자에 앉은 듯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했던 그를 기억하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
The Well-beloved
시간이 참 빨리도 간다.
하루가 짧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