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미켈란젤로_클라우디아 감마 외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던 예술가를 만나다

by Jianna Kwon
<미켈란젤로>_클라우디오 감바 외/예경

이번 주엔 예경 출판사의 ART CLASSIC 시리즈 중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보티첼리>를 읽으려고 한다. 그중 첫 번째 리뷰로 <미켈란젤로>책 리뷰를 써보려고 한다.

1475년, 오래된 피렌체 혈통인 부오나로티 가문의 미켈란젤로는, 워낙은 피렌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번영을 누리던 가문의 전성기가 시기가 지나고 경제적으로 쇠락했던 시기에 태어났다. 심지어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지 6년이 되던 해에 그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그는 유모의 손에서 길러지게 된다. 여기서부터 천재의 운명이 드러날 수 있는 필연적인 상황이 보였으니, 그것은 그 유모의 남편이 석공이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돌을 다루는 것은 어릴 적 놀이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1487년 14세의 나이로 기를란다요 공방에 들어가서 드로잉과 회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회화, 조각, 건축의 '디세요'에 더하여 시까지 쓰는 다방면에 뛰어난 천재로서의 예술가로 성장해나갔다. 그는 천성적으로 자부심이 강하고 야심가일 뿐만 아니라 명석했다. 하지만, 그는 왕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것이 주된 업무인 궁정화가가 되는 것을 끝내 거부하고,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교황을 위한 작품만을 제작했다. 미켈란젤로에게 예술의 목적은 종교 그 자체였다.

그보다 먼저 태어나 이미 유명한 르네상스의 천재로 인정받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는 '회화와 조각 중 무엇이 더 위대한가?'에 대해 사람들이 비교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에 있어서 특출함을 보여주었고,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를 조각함으로 위대한 조각가로 인정받았다. 미켈란젤로가 회화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회화 경험이 별로 없는 미켈란젤로를 곤란하게 하려는 브라만테의 추천으로 고민 끝에 맡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은 그가 회화에도 탁월했음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그는 조각이 더 위대하다고 했다.


나는 대리석으로 만드는 조각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회화, 테라코타, 청동 조각이 재료를 덧붙이는 것과 달리
대리석 조각은 재료를 제거하면서 만들기 때문이다.

관념은 이미 대리석 안에 있으니
그것이 안 보이게 막는 과다한 재료를 제거하고
형상이 갑자기 보일 때 멈추면 될 뿐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돌 속의 형상을 볼 줄 아는 능력을 신에게서 선물로 받았고, 다른 예술가들은 할 수 없어 괴로워했던 <다비드> 거대한 조각을 결국은 완성하는 조각가가 되기에 이른다. 이전의 조각가가 대리석에 실수로 낸 구멍까지도 수용하고 그것을 이용했던 미켈란젤로는 상황과 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여유와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대리석 조각 작품을 보면 그가 그의 손길이 그 대리석의 강함을 녹이고, 그 단단함을 부드럽게 한 것처럼 느껴진다. 아주 유순하고 순종적으로 그의 손길을 통해 숨겨졌던 태고의 모습을 드러낸 조각상들은, 다만 그것들을 발견하기에 적합한 예술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열정과 노력, 직감은 바로 남들은 보지 못하는 돌 속에 숨겨진 최고의 작품을 찾아냈다. 조각은 인간이 그것을 창조한다는 의미보다, 신이 이미 창조해놓고 감추어둔 보물을 인간이 발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그것을 찾아내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가 그것을 마주하게 해주었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리며 온몸을 고통을 이겨내며 끝내 그것을 완성한 그의 불굴의 의지를 존경한다. 아무에게도 맡기지 못할 만큼 그 작품에 대한 애정이 컸기에 혼자 마지막까지 해냈던 그 열의에 감동한다. 성당의 벽체와 지붕을 연결하는 반달형의 루네트, 세모꼴의 스팬드럴, 부채꼴의 펜던티브에 그림을 그릴 때 발생하는 왜곡을 극복하기 위해, 밝고 어두운 색채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단축법을 사용하여 하나하나 그려나간 그의 정성에 감사하다. 바라보기만 해도 벅찬 시스티나 예배당에 서면 가슴이 요동칠 것 같다. 그 순간을 기대한다.

4년 전, 우리나라에 <미켈란젤로>전시회가 있었다. 그때의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우리 꼬맹이들이 그때는 저렇게 어렸구나 하면서 엄마 미소로 사진들 몇 장을 골라보았다.) 일곱 살의 두 딸들과 함께 보았던 그때의 모작들과 사진들이 이제는 다르게 느껴진다. 앎은 한 사람을, 한 시대를, 한 작품을 아주 새롭게 보는 눈을 열어준다. 나에게 미켈란젤로가 이제 그저 유명한 낯선 이가 아닌 것처럼. <피에타>, <다비드>, <어린 세례자 요한, 이뉴 다이와 함께 있는 성 가족>(도니 톤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모세>, <최후의 심판>,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어서 만나고 싶다. 마음은 이미 피렌체와 로마로 달려가고 있다.



2014년 미켈란젤로전(용산 전쟁기념관)의 다비드상 앞에서


2014년 미켈란젤로전(용산 전쟁기념관)의 피에타


미켈란젤로 작업실


그림 그리는 하슬이


아이들에게 미켈란젤로에 대한 책인 <대리석 거인>을 읽어주었다.



The Well-beloved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 미켈란젤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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