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_루차 아퀴노 외

이탈리아의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를 만나다

by Jianna Kwon
<레오나르도 다 빈치>_루차 아퀴노 외/예경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을 그린 화가
과학자이자 해부학자
<<회화론>>을 집필한 미술이론가
"아름다움과 기품과 그리고 힘이 결합되어 있는 천재" by 조르조 바사리



어제의 미켈란젤로에 이어 오늘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는 동시대에 살았던 이탈리아인으로, 둘의 나이 차이는 많이 났지만(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23세 더 많다.) 각각 조각과 회화의 대표 예술가로 비교되곤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52년에 출생했다. 그는 부유한 지주 가문 출신의 아버지와 시골 처녀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였고, 할아버지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생모는 이후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살았다. 이러한 그의 출생의 배경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에 쓰이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레오나르도는 베로키오 공방에 들어가 미술을 공부했다. 그의 재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는 <그리스도의 세례>라는 작품을 완성한 후에 베로키오가 회화를 그만두고 조각에만 전념하기로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세례에서 일부분을 맡아 그리게 된 레오나르도의 그림은 다른 어떤 부분보다 탁월해서 그의 스승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만들 정도였다고 한다. 레오나르도는 자연관찰, 천문, 물의 생태, 수학, 어학, 해부학, 지질학, 건축, 새의 날개, 기계나 병기의 발명, 수력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손수 원고를 써서 기록을 남겼다. 그가 연구한 문제들은 후세들이 고민하게 되었던 문제로써, 그는 시대를 앞서 나가는 과학자이자 예술가였다. 그는 예술의 이론과 실제에 대해 고민했고, 기록을 남겼는데 <<회화론>>에서는 그가 자연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한 '대기 원근법'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그는 단순히 반영된 자연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원인을 따지고 이해하며 탐구된 자연으로 가기를 바랐으며, 실험적인 방법으로 연구하였다. 그는 화가로서의 자신을 과학으로 이끌고, 과학에서 예술을 끌어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밀라노는 아주 밀접하다. 1482년 밀라노로 간 레오나르도는 일 모로의 궁전에서 일하며, 해부학을 연구하고 수많은 초상화에 그것들을 적용하여 그렸다. 그리고 자신만의 창의적 기법인 습식 프레스코 기법으로 <<최후의 만찬>>을 벽에 그렸다. 좀 더 천천히, 느긋하게 수정하여 그리며 더 완성도 있고, 투명하며 빛을 내재한 작품을 만들려던 그의 의지는 금세 탈색되는 현상으로 좌절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완성하게 되였고, 수많은 역사적, 상황적 풍랑 속에서도 지금까지 꿋꿋하게 거기에 있을 수 있었다.

그의 제자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살라이'를 빼놓을 수 없겠다. 살라이에 대한 그의 총애는 그의 상당한 유산과 작품을 그에게 남기는 데까지 이른다. 살라이는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고 행실이 좋지 않았지만, 그를 용서하고 품어주었던 레오나르도를 통해 온유하고 기품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물론 레오나르도가 동성애자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한 편에서는 그때 남색(동성애)으로 고발당했으나, 무혐의로 끝났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이 어땠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족제비를 안은 여인)>_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 책을 읽으며, 그의 말만 들어도 바로 떠오르는 유명한 작품들보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제목의 작품들에 시선이 많이 갔고, 그런 작품으로 인해 더 감동했다. <수태고지>를 보며, 관람자가 작품을 보는 위치와 시선에 따라 작품 속 성모와 천사가 보이는 모습까지 고려하여 제작하였다는 그의 천재성과 치밀함에 놀랐고,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족제비를 안은 여인)>을 보며 한없이 부드럽고 여리고 우아한 그림 속 여인에게 매료되어 한참을 바라보았으며, <천사를 거느린 아기 예수와 그에게 경배하는 아기 성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암굴의 성모, 두 번째 판본)>라는 작품에서는 천사의 옆얼굴과 목으로부터 어깨까지 이르는 모든 선에 취하여 그림 속 성모와 아기 예수가 페이드아웃되는 경험을 하였다. <성 안나와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손자>의 그림을 보면서는 부모로부터 자녀에게로 이어지는, 혹은 어머니와 자녀 사이의 가장 따뜻하고도 사랑스러운 시선과 손길을 목격했다.



<성 안나와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손자>_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지막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바로 그 작품 <모나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누구에게나 쉽게 떠올리는 모나리자의 이미지는 살며시 미소 짓고 있는 온화하고 포근하며 우아한 한 여성의 이미지이다. 이는 레오나르도가 사용한 스푸마토(Sfumato) 기법 때문인데, 어두운 밑바탕에서 시작하여 반투명의 유약을 엷게 겹겹이 칠해 가면서 대상에 삼차원적인 형체를 주는 기법이다. 이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면 <모나리자>처럼, 대상이 윤곽선이나 경계선 없이 안갯속에 떠 있는 듯한 효과를 주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을 수 있다. <모나리자>에서도 그가 자주 사용하는 대기 원근법에 따른 먼 풍경이 보인다. 푸른색을 띠는 풍경은 이 작품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2년 전, 파리에 갔었다. 아이들에게 모나리자를 보여주고 싶어서 안내판을 따라 찾아갔다.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가로 77cm, 세로 53cm의 생각보다 많이 작은 이 작품 앞에서 나는 그 작품에 대한 감동보다 그 작품 앞에 서 있다는 그 자체로 감동을 느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도 없도록 설치된 유리막으로 인해 먼 발치에서 바라봐야 했지만, 수많은 인파를 뚫고 그 앞에 가서 서 있다 감격으로 발걸음을 쉽게 옮길 수 없게 했다. 그녀의 미소와 다빈치의 손길을 오래 느낄 틈도 없이, 다음 사람들이 더 가까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어야 했지만 말이다.



2016년, 파리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앞에서


두 딸들은 그 앞에서 노트를 꺼냈다. 사진을 찍고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과 달리, 아이들은 모나리자를 그림으로 담기 위해 수없이 모나리자와 종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관찰했다. 아이들은 비슷하게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나리자를 더 잘 보기 위해 그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진지했다. 아이들은 모나리자를 바라보고,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눈에 담긴 모나리자가 아이들의 노트에 담길 때는 나도 느긋한 엄마 미소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탈리아에서, 나와 아이들의 눈을 통해 우리 마음에 담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들은 무엇일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2016년 2월,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하임이의 모습


하슬이가 그린 <모나리자> 크로키


빛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생각해보라.
눈을 감았다가 다시 그것을 보도록 하라.
당신이 보는 것은 예전에 거기에 없었던 것이며,
예전에 있던 것은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The Well-beloved
추억을 눈앞에 소환하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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