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감성의 언어로 말하고 쓰다
꽤 오래된 것 같다, 이 책을 보았던 것은.
자주 가는 서점의 입구에 짙은 감색의 책과 이 보라색의 책이 여러 권 쌓인 채 놓여 있었다.
안경을 쓴 깔끔한 인상의 이 책의 저자인듯한 남자 한 명의 사진과 함께.
'베스트셀러인가 보다. 한 번 읽어볼까?'하고 들춰보기도 하다가
이 책의 속내를 마주할 몇 번의 기회가 그냥 지나갔다.
얼마 전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를 읽고 싶었고,
수없이 발생하는 나의 북 위시리스트 중에
가장 편안하게 손이 갔던 책이 이 책이었어서
바로 달랑 한 권 사서 서점을 나왔다.
가볍게 읽을 마음으로 샀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호흡이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라
쉬엄쉬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노란색 형광펜을 찾게 되었다.
웬만해서는 책에 줄을 치지 않고 포스트잇 인덱스를 사용하여 표시해두었다가
따로 북 리뷰 노트를 쓰는 나인데,
형광펜을 꺼냈다는 것은 이 책을 오랫동안 옆에 두겠다는 의미였다.
언젠가는 두고 또 읽겠다는 의미였다.
깊은 의미를 남기는 책이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촉촉하게 하고 내 머릿속을 더 깊은 생각 속으로 인도해주는 마중물 같은 책이어서다.
나는 이 책에서 몇 가지 단어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단어들을 통해서 질문을 하였고
나만의 대답을 하기도 했다.
어떤 글을 읽으면서는 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아주 아름다운 영상 하나를 만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따뜻해졌다.
<언어의 온도>...
이 책은 따뜻한 단어들과 따뜻한 문장들로 채워져있다.
차가운 것들은 끼어들 자리가 없도록
가득 채워진 감성적이고 가슴 뭉클한 내용들.
그리고 "맞아!"하는 순간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p18)
나도 많이 아파본 영역이 있다.
이제는 나와 같은 상처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 깊은 곳부터 울컥해오는 그런 부분이 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플지 알아볼 수 있는 건,
같은 곳이 상하여 수없이 신음소리를 내보았던 경험 탓이다.
언젠가 그렇게 기도한 적이 있다.
"하나님, 제가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이 일로 인해 감사합니다.
제가 겪고 있는 이 아픔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것임을 알아요.
제가 이 일을 겪었다는 그 자체로, 내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것임에 감사해요."
내가 그 힘들고 아픈 상황에서 엎드려서 드렸던 이 기도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누군가에게 내가 겪은 그 일로 인해 위로자가 될 수 있었다.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p248)
멈춤과 나아감을 잘 조절하는 사람이고 싶다.
공백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혹 내가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도
마음이 여전히 기쁨 가운데 있을 수 있는 사람,
여전히 나는 존재가치가 분명하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고 안심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쉴 수 있는 사람이 일어날 수도 있다.
퍼져 누워보지도 않았는데 어찌 다시 일어나겠는가?
호흡을 느리게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어찌 가픈 숨만으로 살겠는가?
쉬어가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웃으며 일어날 수 있고,
웃으며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바람맞으며 뛸 수 있다.
나는 시원한 바람맞으며 뛰는 사람,
때로는 날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쉬는 것도 좋다.
언젠가 다시 달릴 것을 알기에.
이 쉼이 내 평생의 일이 아닐 것을 알기에 쉴 수 있다.
그녀는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게 아니라
찍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으므로 부지런히 셔터를 누른 게 아닐까 싶다.(p259)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이기주 작가의 평에서 눈을 한동안 뗄 수 없었다.
행복했기에 그 순간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찍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기에 셔터를 누른 사람인 비비안 마이어가 부러웠다.
나는 기록을 남기려 한다.
사진 찍는 일이 즐거움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나는 기록을 남기려는 목표를 가지고,
혹은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때로는 사진 찍는 일이 의무가 되고 내 어깨를 무겁게도 하며, 내 손가락 관절을 괴롭게 한다.
그녀처럼 찍는 순간이 행복하여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랬던 순간의 기억들이
내 앞으로의 모든 사진에 묻어나기를 바라본다.
이 책을 읽다가 잠시 옆에 책을 내려두고
두 딸들이 읽어달라고 조르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읽어주었다.
목소리에 힘을 딱 주고
삐삐의 목소리와 아주 흡사할 것 같은 목소리를 지어내어
성대모사를 하며 읽었다.
"요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쟁이!"라고 이야기하며
아이들과 눈 마주치며 웃다가
좀 전까지 보랏빛 감성에 물들어있던 나는 어디로 갔나 싶었다.
엄마는 이렇게 변신한다.
촉촉한 감성을 잠시 옆에 내려놓고
삐삐가 될 수 있는 것.
그게 엄마의 삶인 게다.^^
The Well-beloved
나도 따뜻한 언어를 가진 사람이고 싶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무엇에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