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오베라는 남자_프레드릭 배크만

이 남자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by Jianna Kwon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의 현재와 만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뉜다. 그의 과거까지 알고 있는 사람과 현재로만 인식하는 사람. 오베라는 사람은 처음엔 내가 현재로만 인식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그의 과거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사람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들이나 말들로 우리는 쉽게 그 사람을 평가한다. 하지만, 평가를 잠시 유보해야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지 못했다면 그 평가는 진실로 벗어나있기 때문이다. <오베라는 사람>을 읽으며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사람이 그 사람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이 책을 펴는 순간 도무지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고, 온갖 부정적인 형용사들이 떠오르던 그에 대해 책을 덮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과 애틋함이었다. 그를 위해 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오베는 59세이다. 그가 행동과 말로 미루어 그가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을 형용사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노트 위에 그를 표현할 만한 수많은 형용사들은 줄줄이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고집불통인 소통불가한 이해불가한 삿대질하는 진부한 고리타분한 냉소적인 고지식한 보수적인 강박적인 정확한 못마땅한 불평불만의 철저한 비판적인 깔보는 불신하는 원칙주의의 거만한 명료한 목적 지향적인 분노하는 회의적인 저돌적인 여유 없는 급한 비난하는 부정적인 자린고비인 인색한 시비 거는 까칠한 사회성이 없는 진지한 깔끔한 치밀한 전산화를 싫어하는 계획성 있는....


형용사만 보아도 완고하고 무뚝뚝하고 양볼 살은 추욱 쳐졌으며 매서운 눈매를 가진 할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이 오베였다. 40여 년을 살아온 그 동네에서도 믿을만한 사람 하나 없이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 오베. 그런 그의 옆집에 이사 온 가족들로 인해 그는 잃었던 자기 자신의 마음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스스로에게 울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죽기로 결심하다
출처 : 네이버영화 <오베라는 남자>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정직하게 사는 것을 가르쳤던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했으나, 사람들은 그를 배신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면 사람들도 나처럼 좋은 사람이 되어줄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세상이 질서 있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배신과 오해와 사기로 그의 마음은 닫혔고, 이제는 그 누구와도,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단절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쉬웠다. 가족뿐인 그에게서 소중한 네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흔드는 일이었다. 그의 가족이었던 세 사람과 가족으로 태어날 한 사람이 떠났다. 이젠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죽음은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길처럼 보였다.


죽음에 실패하다

죽음 앞에 선 순간에 자꾸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아무도 곁을 두지 않는 그에게 이 겁 없는 새로 이사 온 이웃 가족은 자꾸 다가오고 간섭했다. 무언가를 부탁하고 수시로 말을 걸어왔다.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하지만, 그들을 뿌리칠 수 없었다. 어쩌면 정말 원하는 건 사람들과의 소통 없는 삶이 아니라, 그래도 곁에 있어줄 가족 같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의 색깔이 되어준 한 사람
출처 : 네이버영화 <오베라는 남자>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더 좋은 건 없다. 덜 싫을 뿐!"이라던 그에게 놓칠 수 없는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녀는 그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주었고, 무채색이었던 그의 인생 속에 춤을 추는 한 사람이 되어주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겪어야 했던 불행은 그가 세상에 등돌리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그녀를 지켜줄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녀가 그런 불행을 겪게 만든 사람들과 사회의 시스템을 견딜 수 없었다. 그보다 먼저 자신에게 닥친 삶을 받아들인 아내였지만, 그는 평생을 그녀 편에서 화를 내야 한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에겐 세상에 화를 내는 것이 유일하게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것이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죽음이 아니라, 외로움이 두려운 건지도 몰라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죽음은 두려움이다. 죽음을 고통스럽게 맞는 것이 두렵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어떤 고통을 겪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더 큰 두려움은 죽음에 더 가까운 상태로 오랫동안 생을 사는 것이다. <잠수종과 나비>에서처럼 육신에 갇힌 채 생을 이어가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오베라는 남자>의 책 속에서 위의 글을 읽으며 어쩌면 죽음보다 외로움을 더 두려워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어떤 지인의 말처럼 "남편보다 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면 좋겠다"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이 휩쓸고 갈 때 나만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그것보다 컸던 것이 오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를 불안하게 했던 이유다. 한 사람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인생이 그 사람의 부재로 '죽음'으로만 직진하려 할 때, 그것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건 그의 손을 잡아 줄 또 다른 한 사람이다. 죽음과 삶은 아주 가까운 것이지만, 이 우주에서 아주 작은 것 같은 육체를 가진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의 곁에 있다면 그 누군가는 삶을 강하게 붙들 수 있다. 아주 작은 갓난 아이가 전쟁통에서 그 어머니가 이를 악물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어주는 것처럼.


출처 : 네이버영화 <오베라는 남자>


가족은 그런 존재다. 내가 삶을 매일 선택하게 해주는 이유가 되어주는 존재. 내가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도록 손잡아 주는 존재.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 연합하게 하시고 또 그들에게 자녀를 주신 이유는 이 세상에서 손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남편이 외롭지 않게 해주는 한 사람이 되는 되는 일이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들이 혼자라고 느낄 때 언제라도 찾아와 안길 수 있는 품이 되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자녀가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었을 때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댈 수 있고 연합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이다. 내가 떠나도, 나의 남편이 먼저 떠나도 우리의 손을 잡아줄 사람들이 곁에 있기를 원한다. 많은 사람이 아니라도 내가 떠난 후에 남편을 웃게 해줄 사람들이 있기를 기도한다. 남편의 어깨를 토닥이고 그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The Well-beloved
한 사람의 모든 인생 속에 들어가는 일은
그의 손을 마지막까지 잡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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