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_그레그 제너

너무나 가깝고 소소하며 일상적인 것들의 역사 이야기

by Jianna Kwon

'아주 오랜, 멀고 먼 옛날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생각하면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봤을 것 같은 그림이 하나 떠오른다. 부스스한 머리(도대체 무엇으로 머리를 감았을까 싶은 머릿결을 가진 머리)에 돌도끼나 돌로 만든 갖가지 도구를 가지고 대충 지은 것 같은 움막 앞에 모여앉은 꾀죄죄한 얼굴의 사람들이 그려진 이미지다. 그 이미지와 현재의 우리가 사는 모습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 펼쳐보면 좋을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너무 소소해서 역사 책에 감히 끼어들지 못했던 일상 속의 역사 이야기가 이 책에서는 주요 소재가 되었다. 화장실 휴지의 역사라든가, 비누는 도대체 언제 생겼는지, 팬티의 역사는 무엇이며, 포크는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칫솔과 치약은 어떻게 상용화되었는지에 대해 우리가 어쩌면 한 번도 궁금해본 적도 없었던 정말로 소소한 것들의 길고 긴 역사가 풀어진다.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상적으로 겪는 일들을 몇 가지 사건이나 주제로 챕터를 나누고 그 역사와 유래를 펼쳐 풀어내는데, 읽는 재미가 있다. 그레그 제너가 이 책을 쓴 목적은 '현대인의 생활방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라는 오래도록 간직해온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함이었고 그 목적에 충실하게 10년에 걸쳐 준비되어 쓰인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수백 혹은 수천 년 전에 이 땅을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가 공통점이 참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라고 서문에 쓰고 있다.

하루의 시작이 왜 해 뜨는 시간 즈음인 새벽 5-6시경이 아니라 자정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자정이 0시라는 것이 통으로 있어도 되는 밤을 쪼개는 것 같았다. 자정에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잠든, 혹은 졸린 눈을 비비며 무언가를 하는 자정에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일출을 보면서 새해를 맞는 것이 아니라, 밤 12시에 졸린 눈을 비비며 송구영신예배를 드린다. 이러한 정오에 하루가 시작되는 관습은 고대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래전에 정해진 관습은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젖어든 채 흘러가는 많은 관습들 속에서 우리는 문득 이상하다는 의문을 품게 되지만, 그래도 이미 적응된 것들이 편하다고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하루 세 끼를 먹은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고대 로마인은 하루에 한 번 cena(세나)라고 하는 제대로 된 식사를 먹었고, 배가 고플 때마다 prandium(프란디움)이라는 간식으로 허기를 채웠다고 한다. 중세 영국인들도 하루에 두 끼만 규칙적으로 챙겨 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세 끼를 챙겨 먹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졌다. 켈로그가 시리얼을 만들게 된 계기가 인간의 동물적인 욕정을 줄여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꽤 충격적이었다.

과거에는 위생의 개념 자체가 현재와 달랐고, 17세기 초 프랑스에서는 물이 아니라 아마포라는 천으로 된 옷을 두르고 있으면 목욕이 필요 없다는 생각까지 했었다는 이야기는 황당했다. 심지어 18세기 이전에는 더러움을 숭배하게 되어 땀구멍이 분비물로 덮여 있어야 건강에 좋고, 물이 인체에 해롭다고까지 생각했다니 그 당시에 살았다면 사람의 냄새를 견디는 게 고역이었겠다 싶었다. 이를 닦을 때에는 막대와 헝겊으로 닦는 것이 세계 공통의 전통이었고, 본격적인 칫솔 사용의 흔적은 중국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뼈로 만든 자루에 돼지털을 바늘로 붙여서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쓰는 칫솔은 1780년 영국인이 발명한 것이라고 하니 300년 전에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우리는 헝겁과 막대기로 이를 관리하다가 충치라도 생기면 발치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칫솔 사용 초기엔 숯검댕, 오징어 가루, 소금, 분필 등으로 치아를 닦았다고 하니 지금 이렇게 상쾌한 치약을 사용할 수 있음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름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유명한 역사 속 인물들이 줄줄이 나열되고 사건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역사 책도 좋지만, 내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특별하게 느껴지게 하고, 내 손에 들려있고 내가 하고 있는 이 일들이 그냥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님에 감사하게 해주는 이런 책도 참 좋다. 지금 내가 사는 오늘의 소소한 일상도 대단한 역사의 흐름 속에 있다는 감격은 덤이다.



The Well-beloved
눈에 보이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저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세상이 갑자기 거대하고 벅차게 느껴진다.
어머나! 세상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베라는 남자_프레드릭 배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