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육체 속에서 날개짓하는 영혼의 기록들
이 책은 특별한 책이다. 손가락이 아니라, 눈으로 쓴 책이기 때문이다. 이는 은유가 아닌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 장 도미니크 보비는 1952년생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잘 나가던 한때, <<엘르>>지 편집장이자 저명한 저널리스트로 젊은 날들을 꽃피우던 그는 1995년, 그의 나이 43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가 받은 진단은 Locked-in syndrome, 그는 왼쪽 눈을 깜박거리거나 고개를 약간 움직일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이런 상태로 15개월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고, 이 책은 그가 Locked-in syndrome 일 때 눈 깜박임으로 쓴 글들로 이루어졌다. 이 책은 <잠수종과 나비>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이후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상황이다. 눈 깜박임이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 되는 상황. 이런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현실로 닥친다. 상상으로도 답답한 그 현실이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잠수종이 한결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의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나들이 길에 나선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시간 속으로, 혹은 공간을 넘나들며 날아다닐 수도 있다. 불의 나라를 방문하기도 하고, 미다스 왕의 황금 궁전을 거닐 수도 있다.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머리를 세차게 도리질하며 그 생각을 떨쳐내고자 했던 날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아니 여러 명에게 말했었다. 내 죽음에, 내 인생의 끝에 그런 상황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의식은 명료하지만, 육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부디 처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나의 답답함은 차치하더라도, 끝없는 기다림으로 내 곁을 지켜야 할 내 가족들을 위해서 부디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기에 장 도미니크 보비가 삶의 마지막에 겪은 일들은 내게 막연한, 아니 어쩌면 명료한 두려움이었다.
그는 글을 쓰기로 했다. 프랑스어에서 사용되는 빈도에 따라 철자를 배치한 글자들의 빌보드 차트를 보며 원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박이고, 상대방이 그 글자를 받아 적으며 알파벳 하나하나를 써나가서 단어 하나를 만들고 문장 하나를 만든다. 이 책은 그렇게 쓰인 책이다. 그렇기에 음절 하나하나가 쉽게 읽히지 않고 때로는 가슴을 아리게 하고 먹먹하게 한다.
눈을 감으면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 꿈이 더 현실 같았다. 눈을 뜨면 도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그것이 꿈이기를 바랐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꿈도 현실과 일치하게 되었다. 꿈속의 자신이 갇힌 몸속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느꼈을 때의 그 절망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몸이 움직일 수 없어도 영혼은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정서는 그 영혼을 자유롭게 두지 않는다. 갇혀버린 몸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들은 영혼까지 붙들어버린다. 그렇기에 그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편안하게 글을 써 내려간 그의 영혼으로 인해 감격스러운 것이다. 잠수종에 갇힌 것 같은 육체 속에서 나비와 같은 영혼을 가지려 했고, 실로 그런 삶을 살아냈던 그의 흔적이 담긴 이 책은 기적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어도 '사랑한다'라는 말도 입 밖으로 낼 수 없고, 손으로 머리털 한 번 쓸어 줄 수도, 따뜻한 체온으로 서로를 으스러지도록 안아줄 수도 없는 현실을 마주할 때, 경련과 같은 몸짓과 눈물이 그의 얼굴을 뒤덮었다. 사랑한다는 말밖에. 가슴으로 수없이 되뇌던 그 말, 한 번 만 그 귀에 들려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그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흘리는 그의 눈물 앞에서 나도 울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로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이 거기에 있지 않고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고 느꼈다. 살아 있으나, 거기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 영혼이 다른 육신들의 생의 관찰자가 된 느낌.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종을 열어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없을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줄 만큼 막강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삶의 감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 내 작은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 내 입술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내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칼을 쓸어주고, 그 어깨에 손을 얹어 토닥일 수 있다는 것, 가족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 그들을 위해 소박한 밥상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이야기를-아주 사소한 일까지-듣고 "그랬구나."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벅차도록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하루가 또 간다. 내 숨소리가 크게 들리는 밤, 살아 움직이고 있음이 기적으로 느껴지는 밤이다.
The Well-beloved
열쇠를 찾기 위해 그곳에 간 장 도미니크 보비를
그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