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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녹 Jul 28. 2020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

좋아하는 일은 일로 해도 좋아요.

15살 때 부터였던것 같다.

나의 국어 선생님이 꽤나 열정적이었고, 그래서 영화 감상 동아리에 매주 열심히 참여했다.

함께 영화를 본 뒤 감상을 나누고 글로 적었다. 

그 때가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16살 때는 독서토론 동아리에 가입했고, 도서관에 자주 들르다 보니 사서 선생님과 친해졌다.

불과 100미터가 떨어진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에는 문학창작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리고 작은 청소년 문학 잡지 기자도 되었고, 백일장도 나가고 독후감도 끄적이며 자주 글을 썼다.


나는 풀어 말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는 했는지 궁금하니까.

함축해서 담기에는 해석하기에 너무 많은 여지를 남기니까, 오히려 싫었다.

그래서 수필을 쓰기 시작했고, 내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는 일이 발산하는 생각을 정리하는 유일한 방법이 됐다.

내가 만난 좋은 선생님들은 죄다 국어선생님이었고, 그래서 국문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모든 수업에서 '쪽글'이라고 하는 형태의 글을 매 시간마다 제출해야 했다.

A4 1장, 말하자면 5~6문장이 담긴 1문단이 최소 3개에서 많게는 5개가 들어간 글을 의미한다.

서론, 본론, 결론이 각 한 문단씩 담겨야 하기에 생각을 더 많이해야 했는데, 그게 훈련이 잘 된것 같다.


지금도 다시 봐도 부끄럽지 않은 글들이 몇개 있어, 이 공간에 올리고 나누고 싶다.

좋은 글을 많이 읽었고, 이런 생각을 해서 현재의 내가 있으니...

떠올려 보면 과제가 부담감은 있어도 싫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것 같다.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창작 동아리에서의 단상


디오니소스와는 추억이 참 많다.

백일장을 다니면서 글 쓴 기억보다는 자연을 느끼며 놀고 맛있는 걸 먹었던 기억이 더 남는다.

진주에 백일장을 갔을 땐 시험을 5일 앞두고 있었다.


몸은 피곤한데 정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시 심사를 하는 동안 시간이 남았다. 

산성엘 갔더니 풀 내음이 너무나도 향기로웠다. 

그 향에 취해 구경은 안 하고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나무 그늘 삼아 잠을 청했다. 

2시간을 내내 잤더니 옷에 풀물이 들고 등이 축축했다.


그래도 마냥 좋기만 했다.


한 번은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배경이 되었던 곳을 방문했다. 

초가집 마루에 앉아 어떤 글을 쓸 지 생각하는데 돌담 아래에 앙증맞게 피어있는 봉숭아꽃을 보았다.


냉큼 마루를 내려가 꽃과 잎을 따 돌로 찧었다.


찧은 봉숭아꽃을 손톱 발톱에 얹고 잎으로 묶은 채 글을 썼다. 

글을 적는 연필이 자꾸 손톱을 건드려 글에 집중이 안 되었다.

하지만, 멀리서는 판소리 들려오고 선선한 바람에 나는 초가집의 마루에 엎드려 글을 쓰고 있었다.

더 이상의 환경이 있을까...


글을 보여준다는 게 참 쉽지 않았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 놓는 게 쉽지 않듯,

지면으로 나를, 나의 글을 대하는 사람이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두렵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산문을 주로 쓴다.

일상의 경험이 묻어나고 그 속의 내 마음이 그대로 보여진다.

글이란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쓸 때만큼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일기가 아닌 이상 또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첨삭 받고 싶기도 하고 또 감상을 듣고 싶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스며드는 걱정으로, ‘나 혼자 보고 말지’하는 것이다.


그런 내가 김필임선생님께 일대일 첨삭을 받고

친구들과 자신의 작품을 돌려 읽으며 평을 했다.

얼마나 위대한 발전인지. 이 일만큼은 스스로 칭찬해 주었다.


그러던 중 신경숙 작가님의 「외딴방」이란 소설을 읽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픽션과 사실의 중간이라 하며 시작한다.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결국 나는 하나의 점 대신 겹겹의 의미망을 선택한다."


할 수 있는껏 두껍게 다가가자고, 한겹 한겹 풀어가며 그 속에서 무얼 보는가는 쓰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고, 그건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열 사람이 읽으면 열 사람 모두를 각각 다른 상념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게 좋겠다고, 그만큼 삶은 다양한 거 아니냐고 문학이 끼어들 수 없는 삶조차 있는 법 아니냐고.’


머리가 마구 복잡할 때도 글을 쓰면 편해진다.

너무나도 큰 문제가 내 앞에 닥친 것처럼 느껴질 때도

글로 쓰고 나면 별 것 아닌 게 되었다.


글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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