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그리다
*프롤로그 - 아침에 집에서 나오기 전 김영하 작가의 <보다>를 읽었는데, 그 책에서 작가는 사회비판적인 시각으로 '자유' '선택' '계급'등을 이야기했다.
어제와 같은 모습의 출근길이다. 광흥창역 3번 출구, 눈치싸움 끝에 겨우 153번 버스에 올라탔다.
독서의 힘! 어제처럼 나는 꽉 끼어 옴짝달싹 못하고 겨우 손잡이 하나에 체중을 지탱한 채로 서 있었지만 이 열악환 환경에서 생각이란 걸 했다. 마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것처럼, 몸뚱이는 몸뚱이대로 두고, 생각의 날개가 돋아 올라 버스 천장에서 버스 안의 사람들을 쫙 내려다보는 기분을 느꼈다.
이 작은 버스 안에도 계급과 권력이 있더라.
먼저 타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견고한 자산가들이다. 이들은 출입구 쪽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 따위는 관심 없다. 이들이 엉덩이 붙이고 있는 좌석은 아무도 침해할 수 없다. 내가 있는 이곳은 타냐 못 타냐, 지각이냐 세이브냐, 마치 시리아에 전투기 폭격이 진행 중인데,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를 보거나, 평온하게 졸고 있는 그들은 동시대 지구 반대편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고고하게 홍차를 마시는 부르주아 같다.
좌석에 앉지는 못했지만, 뒷좌석 바로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중산층이다. 이들은 먼저 선점한 자기 보폭만큼의 면적에서 나름 쾌적하게 서 있었는데, 출입구 쪽부터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이 이 자리를 탐내는 것이 못마땅하다. 맨 안쪽 사람은 더 들어갈 수 있지만,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그나마 여기가 명당인데, 쌩판 모르는 사람들이 지각을 하거나 말거나.
나를 비롯한 광흥창에서 버스에 타는 사람들은 서민층 혹은 극빈층이다. 그나마 버스 문이 열리는 곳에 서 있다가 버스에 잽싸게 올라 탄 사람은 손잡이라도 잡은 서민층이다. 맨 나중에 몸을 날려 버스 계단에 까치발로 서 있는 사람들은 발바닥만큼의 땅도 허락되지 않는 극빈층이다.
극빈층 중에 극빈층이 볼맨 목소리로 소리쳤다. "거 안쪽분 좀 들어가 주세요."
중산층 사람들은 들은 척도 안 한다. 자기가 서 있는 공간 정도는 인간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면적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다행히도 이 만원 버스에는 신이 있었고, 그 신은 원칙이 있다. 바로 버스 문이 닫혀야 출발을 한다는 버스 기사라는 신!
극빈층이 대롱대롱 계단에 매달려 있는 상태로는 버스 문이 닫히지 않아 버스를 출발할 수 없었다. 출입구에서 타느냐 못 타느냐의 사투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극빈층도 서민층도, 중산층도 심지어는 부르주아도 지각을 피할 수 없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었던 부르주아 한 명이 의자에 앉은 채 한마디 했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주세요."
문짝이 닫히냐 마냐 기로에 서 있던 극빈층이 이에 힘입어 다시 소리쳤다. "같이 갑시다. 좀 들어가세요!"
사람들의 눈초리가 따가워서 인지, 본인도 지각을 할 것 같아서인지 안쪽에 서 있던 중산층들이 조금씩 움직였고 버스 문이 닫혔다.
오늘은 극빈층에게 운이 좋은 날이다. 어떤 날은 부르주아가 계단을 내려다보며 극빈층에게 "다음 차 타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극빈층에게 따가운 화살을 쏘고, 극빈층은 할 수 없이 버스에서 내릴 수밖에.
어쨌든 버스가 달리기 시작했다. 부르주아들은 여전히 편안하게 앉아서 러시아워를 즐겼고, 중산층은 약간 불편해졌으며, 서민층은 아까나 지금이나 꽉 끼어있는 상태이고, 빈곤층 두 명은 지각에서 구제받은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