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그리다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으로 작가 수업을 듣고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매일 글을 쓰자고 다짐한지는 2주째이다.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입이 닫히고 손가락이 굳은 것처럼 글을 쓰기가 곤혹스럽다.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 번째는 나에 관한 것. 쓰고 싶을 때 쓰고, 혼자서 쓰는 것과 매일 쓰고, 다른 사람들이 읽는 글을 쓰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심지어 한 글발 한다는 사람들이 보는(실제로 많이 보았느냐는 별개로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마치 샤워한 후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사람들 앞에 서는 기분이다.
스스로 평가해 볼 때, 나는 논리적이지만 창의적이지는 못한 것 같고, 생각이 많지만 독서량이 적어 표현력이 떨어진다. 통통 튀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탄복한 후, 내 글을 써야만 할 때 그 막막함이란. 그래서인지 탄복하고 읽은 다른 사람의 글에 한 줄 댓글 다는 것도, 내 글에 달린 댓글에 고맙다는 답글도 할 수가 없었다. 멋있고 기가 막힌 한 줄을 써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 그것이 내 입을 닫아버리게 만들었다.
실제로 우울한 내 글을 보고 학원 동기분이 힘내라며 커피와 케이크 쿠폰을 보내주었다. 뜻밖에 감동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상황에서 뭐라 해야 할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이 감동을 어떻게 시적으로 표현할 것인가 고민하는 동안 시간이 흘렀고, 당황한 나머지, “이게 뭔가요”라고 형편없는 첫마디를 해 버렸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며칠 후에는 그 동기의 글에서 힘듬이 느껴졌고, 나 역시 위로하고 싶고 격려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떤 단어와 어떤 문장을 써야 하나, 하고 한두 시간 고민했지만 끝내 아무 말하지 않았다. ‘힘내세요!’ 한마디면 전해질 마음인 것을...
이런 나의 부족함과 부담감은 스스로 싸워 이겨내야 할 것들이라는 점에서 숙제이자 극복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독서량을 늘리고, 가볍게 쓰기 위한 연습. 그것이면 될 것이다.
두 번째 글 쓰는 게 어려운 이유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정신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이는 나로 기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어렵고 크게 느껴진다. 요즘 인터넷의 글들을 읽다 보면 ‘신토불이’, ‘단일민족’하는 것들에 대해 백일장에서 글을 썼던 학창 시절의 기억이 새삼 격세지감으로 다가온다. 헌법 제9조에서 국가는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는데, 민족문화가 무엇인지, 국가가 민족문화라는 단일한 가치를 육성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더 나아가 국민 개개인만 존재하고 국가는 극히 관념이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도 자칫 허무주의, 무정부주의로까지 빠질 수 있는 이 위험한 생각들을 다가 “무엇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이런 시대 속에, <메시지>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하는 작가라는 직업은 참 어렵겠다. 아마도 주장과 주장의 칼날이 부딪히는 갈등의 시대는 작가에게 살얼음 판을 걷는 것과 같은 조심성을 요구할 것이다. 작가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주장해야 하는데, 그 메시지는 다양성의 관점에서 항상 옳을 수만은 없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그 주장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무자비한 비판을 견뎌야만 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날 선 주장과 거침없는 표현이 무섭다. 이 상태로 글을 쓴다면, 비판을 피하기 위해 혹독한 자기 검열을 하며 떠오르는 생각들 대부분을 가지치기할 것이다. 그러다 밑동만 남은 나무 같은 글을 쓸 것이다. 그것이 과연 좋은 작가일까.
나의 두 번째 두려움은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변해야만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다양성”의 존중, 자기 의견의 “주장”>의 시대이다. 다양성을 발판 삼아 주장이 물밀 듯 쏟아지지만, 들여다보면 남은 것은 관용 없는 주장들이다. 다양성은 주장의 홍수에서 트리거일 뿐. 거센 주장만 남은 이 시대가 진화하면, <다양성의 “존중”, 자기 의견의 “주장”>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양성의 ‘존중’에 방점이 찍히는 시대. 글을 쓰는 작가도 다양성을 ‘존중’ 하는 따뜻한 시각으로, 이를 수용하는 사람들도 다양성으로 ‘존중’ 하는, 그런 세련된 사회. 그런 사회에서 자유롭게 지느러미로 헤엄치는 작가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