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키

인물을 그리다

by 쓰는사람전볼

키가 큰 우리 아빠. 아빠는 지금의 183센치 키가 고등학교 입학 할 즈음에 완성됐다고 했다.

아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두고 타지로 유학을 갈수 없어, 동네에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던 때였다.


내가 아빠의 반도 안되던 키이던 어린시절엔 안방 문켠에서 누워 있는 아빠를 지나가야 할 때면 여간 수고스러웠다. 아빠의 긴 다리를 따라 발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 귀찮아 하루는 누워있던 아빠 허리춤을 가로질러 넘어가다가, 된통 혼이 났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겨울방학 탐구생활에서 연날리기를 해 보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내가 연을 사달라고 조르자, 아빠는 동네 뒷산에서 대나무를 휙휙 베어 연의 뼈대를 만들고, 통나무 몇개 주어다가 얼레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한겨울에 마당에서 톱과 망치를 들고 혼자 열중하더니, 정말 멋진 방패연이 완성 됐다. 아빠 키가 그때만큼 커보였던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 시절, 나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공부를 해보겠다고 스스로 굳건한 다짐을 했었다. 수학 문제집을 한권 사와서 푸는데 도저히 모르겠어, 문제집을 가지고 아빠에게 달려갔다. 이전에도 뚝딱뚝딱 풀이과정까지 해설보다 더 상세하게 적어주던 아빠였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잠깐 문제를 보더니, 바쁘다며 조금 이따가 풀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서너시간 동안 내가 물어본 문제를 가지고 끙끙대고서야 답을 적기 시작했다. 간략하게 답이 적혀진 문제집을 받아 보는데, 그마저도 해설지와는 틀린 답이었다. 아빠의 키가 160센치 내 키만큼 줄어든 날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원서를 쓰던 고3 겨울, 국문과에 가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말에 아빠는 법학과에 가서 검사가 되라고 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검사가 되라고 했다. 나는 막연하게나마 알았다. 아빠의 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삶을 나를 통해 풀고 싶었으리란 걸. 아빠가 나에게 무언가를 원하던 첫 한마디였다. 아빠는 이제 나보다 더 작아져 있었다.


몇년 전, 60살 환갑기념 아빠의 생일을 맞아 온가족이 스위스 여행을 했다. 월급에서 조금씩 떼 모은 돈으로 나선 첫 가족여행. 스위스 인터라켄에 있는 피르스트는 해발 2168미터에 있었다. 정상에는 절벽에 유리로 만들어진 전망대가 있었는데, 엄마는 신이난 표정으로 유리 전망대에서 가족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아빠는 왠걸, 반대편 곤돌라 승강장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우리끼리만 찍으라고 했다. 알고보니, 아빠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것이다. 183센치 아빠가 고소공포증이라니, 30년 넘게 아빠 딸로 살았는데 아빠가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다음날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싶다는 엄마는 고소공포증 아빠를 두고 혼자 하늘을 날았다.


돌아보니 아빠가 이제 내 허리춤만한 키로, 내 뒤에 서 계신것 같다. 아빠 키가 줄고 줄어, 나중에는 품에 안고 걸어야 할 때가 올거란걸 안다. 천천히 작아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아빠 키가 183센치미터가 되던 해의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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