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by 쓰는사람전볼

마을과 마을 사이로 이어지는 도로.

그 중간쯤에서 우측으로 틀면 야산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이 하나 있다.

소나무가 빽빽한 비포장 흙길이라 차로 빠르게 달리다 보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그 길이 우리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사실 우리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전 떠나왔기에 나의 부모님이 사는 집이라 칭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거울 앞에서 갈매기처럼 이어져 있는 눈썹을 눈썹칼로 정리할 때마다 그곳이 떠오르던 건 아버지 때문이다.

나와 똑 닮은 아버지.

거울 속의 내 얼굴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아서라기보다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서로 닿을 기세로 자라나는 눈썹을 다듬는 내 손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숲길의 잡초를 베어내던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툭.

나는 아버지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듯 콧대 위 오른쪽 눈썹과 왼쪽 눈썹이 맞닿은 지점에 눈썹칼을 들이대곤 했다.


‘생긴 것만 닮지, 인생은 왜 닮아.’


외모가 닮는 건 유전자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지만, 나는 공무원이 하고 싶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때문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다는 아버지의 인생까지 닮아가고 있었다.

나는 작가가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 때문에 법대에 갔다.

아버지처럼 지난 선택을 사무치게 후회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또 하나, 우리가 같은 인생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며칠 전의 일 때문이다.


"늬 아빠가 이상해."


어머니의 전화였다.

날이 더워지자 옷장에서 아버지가 즐겨 입던 인디언 핑크색 반팔티를 꺼내 입고 나가라고 했는데, 이 옷이 누가 사준 거 같은데…누가 사줬더라…, 했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사위가 사 준 옷이라며 하루 걸러 입던 그 옷을 앞에 두고 말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할머니가 치매로 십 년을 고생하시다 돌아가셨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리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아직 나는 내 인생을 사느라 바빴고, 그날은 적어도 십 년, 아니 십오 년은 있어야 올동말동 하다 착각했던 것이다.



코로나 시기.

TV에서 추석특집으로 나훈아 공연을 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보낸 후 안방에서, 나는 귀경길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그 공연을 보고 있었다.

-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홍시> 노래를 들으며 가슴이 시큰해 그만 눈이 벌게졌다.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나훈아 노래하는 거 봤냐?

-응. 봤어. 아빠도?

-응.

-좋더라. 나도 감동받았어.

-아빠도 울었어. 할머니가 생각나서.


그때 아버지가 흘린 눈물을 나 역시 흘리게 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막고 싶은 후회였다.


곧바로 대학병원 진료 예약을 해 둔 후 고향으로 내려갔다.

한두 번 깜빡깜빡하는 건 누구나 그런다며 태연해하거나, 아직 일흔도 안된 나이에 치매 의심을 받는 게 자존심 상해하거나 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병원에 가겠다고 하셨다.

아마도 아버지가 병원행을 거부하지 않은 건 할머니 때문이라 생각이 들었다.

다만 자신도 유전일 거라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조기 발견해 자식들 고생을 덜 시키고자 한 것인지 까진 알 수 없지만.


하지만 벌써부터 후회가 밀려온다.

아버지 바람대로 판결문을 쓰는 인생이 아니라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는 인생을 사는 나는 글을 쓰는 삶을 동경하는 만큼 아버지를 원망했다.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내게 투영했던 아버지의 욕심과 그 기대에 못 미친 초라한 삶이 싫어서 한동안은 명절에도 찾지 않은 고향.

그때 내가 집으로 향하는 그 오솔길을 걸었더라면 스무 번은 더 걸었을 텐데.

부지런히 찾아간다 해도 잃어버린 스무 번을 채울 수 있을까.

그런다 한들, 그 길 끝에 서 있는 아버지는 이미 기억을 덜어내기 바쁠 텐데...


나훈아의 홍시가 벌써부터 눈물이 난다.

이제 눈썹 앞머리를 자르는 일도 그만 두려 한다.

그런다고 끊어질 관계가 아님을 알면서도 너무 오래 계속해 왔다.

이제 눈썹까지 닮아버릴 아버지와 나.

그 아래 흐를 눈물은 제발 천천히, 아주 천천히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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