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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조 Jan 11. 2016

헬조선 청년이 덴마크를 만났을 때 #1

만남을 앞두고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다.

※ 이 글은 덴마크에 가기전 읽었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지음] 라는 책에 대한 감상문입니다.


1. 도착한 것은 생각보다 더 수수한 느낌의 책이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책이란 걸 내보고 마케팅을 해보며 책이란 게 얼마나 선택받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 눈에 띄는 디자인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이 아니면 바로 외면당하는 게 현실이었다.


이 책은 그런 경쟁에서 한 발 비켜선 여유로움이 느껴졌달까. 가벼운 에세이집처럼 보이는 제목과 표지. 행복을 다루는 다른 책들처럼 너만 행복의 비밀을 모른다는 식의 아는 체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행여나 그랬다면 내 의심은 더 확고해졌을 것이다.


덴마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했을 때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북유럽의 복지 시스템을 배우자는 이야기는 늘 단골이었으니까.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외국의 좋은 시스템을 도입해보려는 크고 작은 시도들을 경험했고 지켜봤었다. 많은 경우 결과는 흐지부지 끝나곤 했다.


흔히 비법이라 생각하는 조직이나 체계, 방법론은 그 사회의 문화와 사고방식에 따라 사람들이 만든 틀 일 뿐이다. 시스템의 바탕에는 늘 기본을 이루는 문화가 있고 그 문화를 만드는 교육이 있으며 그 문화가 만들어진 환경이 있다. 교육, 문화, 환경과 분리된 시스템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마음을 닫은 채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 책은 처음부터 핵심을  던지기보다는 내가 익숙할 법한 시선과 풍경에서부터 서서히 나를 이끌어 갔다. 밥을 먹는 식당에서, 어딘가로 향하는 택시에서, 우리가 아는 장난감 회사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평등하게 바라보며 서로 믿고 소통하는 모습. 다들 한 번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산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속으로 상상해봤던 모습들이었다. 그들은 담담했고 당연했으며 나는 부러웠고 어느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책은 행복 1위 덴마크 사회를 만든 배경을 찾아 하나씩 확인해간다. 특히 그들의 자유로운 학교와 교육과정을 통해 평등과 신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찾아간다. 덴마크식 교육 비법? 내가 느낀 핵심은  우리나라처럼 사람을 쓸모 있는 자원으로 길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자기 삶을 찾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관점의 차이였다.


덴마크 학교의 즐거운 분위기, 자유와 평등에 대한 철학들도 좋았지만 특히나 좋았던 건 초중 과정인 폴케스콜레에서 아이들이 최대 9년까지 같은 반으로 지낸다는 사실이었다. 이 대목에서 요즘 열심히 시청 중인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 친구들이 생각났다.


출처 : 혜리 인스타그램

그 골목의 다섯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던 것은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노래하고 춤추고 또 화나고 싸우는 그 기나긴 시간들에 늘 함께라는 점이었다. 오랜 시간을 같이 하며 몸에 자연스럽게 쌓이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 특히 순수했던 시절에 함께 한 시공간이 만들어주는 관계의 즐거움은 무엇도 대신할 수 없다. 누군가를 믿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가치는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어린 시절 몸으로 느끼는 데서 시작한다. 덴마크 어른들은 이걸 기억하고 있었다.




2. 덴마크의 학교들을 만나다 보면 한 사람의 이름이 계속 나온다. 그룬트비, 덴마크 교육 철학의 시발점이자 아래로부터의 변화라는 멀고 먼 길에 자신의 삶을 걸었던 사람이다. 그는 당시 덴마크 사회의 중심이었던 농민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 그들을 다듬어 새로운 시민들로 키워냈다. 그를 통해 깨어난 사람들은 다시 자기 마을로 돌아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는 국가와 개인, 자유와 평등, 신앙과 교육 같은 삶의 큰 주제들 속에서 함께 추구해야 할 균형의 지점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삶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그가 음악을 사랑하고 수많은 노래를 만든 시인이자 음악가였다는 점이었다. 그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였으리라.


그룬트비(Grundtvig)

그러나 헬조선의 젊은이에게 그의 삶은 너무 아득한 이야기였다. 간절히 희망을 꿈꾸지만, 변화에 삶을 건다는 건 일단  먹고살만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그간 몸으로 처절하게 배웠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짐과 사회의 짐을 같이 지려다가 포기하고 쓰러져갔다. 변화라는 건 의지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 제일 와 닿는 위로였다.


나 역시 그 포기의 경험자다. 민망한 고백이지만 사실 내 인생에도 그룬트비와 유사한 부분들이 있다. 지난 8년간 내 인생의 키워드는 음악과 청소년 이었다. 뮤지션이 되고 싶었지만 졸업 후 얼떨결에 하게 된 대안학교 교사라는 일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1년의 대안학교 생활 이후 무슨 일을 하며 살까 고민하던 나는 동료들과 함께 유자살롱이라는 작은 공동체이자 회사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을 모아 노래와 악기, 밴드 활동을 가르쳤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났고 진정한 자기 모습을 찾아갔다. 덴마크의 자유학교가 전혀 부럽지 않은 시절이었다.


출처 : 유자살롱

우리의 노력 덕에 활동은 성공적이었고 많은 친구들이 유자살롱을 통해서 다른 삶을 찾게 됐다. 하지만 2015년을 마지막으로 유자살롱은 문을 닫았다.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했지만 사회의 지원 없이 우리의 힘만으로 이상적인 배움의 공간을 유지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물론 우리의 실력이 부족하기도 했다. 살아남기 위해 애썼지만 점점 살아남는 것만 목표가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만두는 것을 택했다.


힘들게 일을 정리하고 이제 한동안 그런 것들을 좀 잊고 살아야겠다 싶었는데 바로 이 책을 만나 게 된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지난 시간의 아쉬움이 더 커졌다. 세상의 변화는 노력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화라는 타이밍이 받쳐줘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우리의 도전에 대한 아쉬움도 더 커졌다.


책을 보며 느끼는 건 덴마크의 사회의 핵심은 ‘위대한 그룬트비’라는 존재가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람을 소화해낸 과정 그 자체라는 점이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기술과 환경의 변화가 함께 했으며 성과들이 쌓여 견고해졌다. 반대로 한국 사회의 문제는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선구자들의 노력과 사상이 발 붙일 수 없었던 구조와 상황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오늘날처럼 극도로 복잡해진 사회에서 그런 변화를 다시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너무 냉정해진 걸까.




3. 책을 덮으며 생각의 변화들을 되짚어 본다. 이 책을 읽기 전, 유자살롱 이후 내가 세운 다음 목표는 제대로 비지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생산성의 문제를 먼저 고민해야 된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는 깊이 다루지 않았지만 결국 경제적 성장이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룬트비가 변화의 토대를 만들었다면 여기에 살을 붙인 건 수많은 협동조합과 황무지의 개척이라는 경제적 기반의 발전이었다. 만약 개척에 따른 경제적 보상이 없었다면 아래로 부터의 참여는 가능했을까? 협동조합이 만든 치즈를 사줄 타국의 중산층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이제 이 세계의 성장은 거의 끝자락에 왔다. 경제 성장을 잃어버린 공동체는 조금씩 붕괴되며 위기를 맞고 있다. 유자살롱도 그랬다. 다들 경제 성장을 되찾기 위해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그 혁신의 중심에 서있는 곳은 미국이며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이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내놓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만 해도 내겐 이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치열한 경쟁이지만 패자 부활전을 보장해주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의 첫 장에서 만난 지긋한 나이의 웨이터는 언젠가 나도 나이가 들어 그처럼 일할 날이 올 것임을 떠올리게 했다. 나도 그때가서 저렇게 만족해하며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을까. 이 경쟁 속에서?  혁신가의 길은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뛸 수는 없다. 설령 젊었을 때는 그러하더라도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렇게 뛸 수 는 없다. 함께함의 고민이 없는 혁신 경쟁은 결국 부메랑이 될지도 모른다.


덴마크 이야기를 통해 깨달은 것은 뛰어난 효율은 깊은 신뢰에서 나온 다는 것. 몰입과 집중은 자신에 대한 여유있는 성찰에서 나온다는 것. 연대하면 시대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 평등과 혁신은 꼭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말 큰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세계적인 경쟁에서 예외일 수 는 없다. 분명 덴마크 사람들도 계속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생산성을 가진 공동체에게 미래가 있다는 내 생각엔 변화가 없다. 좋은 도구를 잘 만드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는 생각도 똑같다. 다만 이제 그 도구에는 기술뿐만 아니라 신뢰와 여유, 평등과 함께함도 챙겨두기로 했다.




아직은 어깨가 무겁고 여전히 앞날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좀 더 방향을 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이 책을 만든 분들 그리고 추천해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 덴마크에 가서 알게 됐는데, 요즘 초중과정 9년은 저,중,고 3년씩 같은 반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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