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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조 Feb 23. 2016

헬조선 청년이 덴마크를 만났을 때 #4

우리는 함께 웃는 것만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란 참 힘든 곳이다. 헬조선이라 부르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천국 같은 학교들이 많이 있다. 덴마크 탐방의 첫 방문지인 에프터스콜레(efterskole)도 그런 곳이었다. 


에프터스콜레는 덴마크의 철학이 담긴 독특한 교육시스템이다. 중학교를 마친 청소년들은 고등학교에 바로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 에프터스콜레라는 1년 과정의 특별학교를 선택해서 다닐 수 있다. 이 특별학교에서는 기본적인 교과목도 배우지만 그보다 예술과 체육 분야, 그 밖의 다른 과목이나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지낼 수 있다. 여유와 특별함이 함께 하는 이 시간을 통해 고등학교와 그 이후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1년을 마친 이후에는 대부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에프터스콜레를 다닌 친구와 안 다닌 친구가 구분 없이 섞여서 같이 공부한다.


에프터스콜레는 주로 도시에서 떨어진 농촌에서 기숙학교 형태로 운영된다. 학교마다 운영하고 있는 과정과 내용이 다 달라서 학생들은 자신에게 맞는 과정이 있는 곳을 찾아 지원해서 간다. 내용은 우리나라의 대안학교와도 비슷하지만 기존의 교육제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이며, 정부에서 인정하고 지원하는 정식 과정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버스를 타고 겨울 왕국의 들판을 한 시간쯤 부지런히 달려 우리의 첫 방문지인 토료세 슬롯츠 에프터스콜레(Tølløse Slots Efterskole)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것 같은 옛 건물과 커다란 나무들이 우릴 반겼다. 아름답고 고즈넉한 경치 때문 에라도 입학하고 싶을 만한 곳이었다.


Tølløse Slots Efterskole (by 오마이뉴스 정민규©)

눈 밭을 지나 건물에 들어서니 한 사람이 문 앞에 나와 한 명 한 명에게 ‘안녕하세요’를 건네며 반갑게 맞이해줬다. 이곳의 교장 선생님 애나(Anne)였다. 작지만 기분 좋은 환영을 받은 후 우리는 작은 교실에 모여 학교 소개를 받는 시간을 가졌다. 애나가 먼저 전반적인 설명을 해줬고 선생님 앨런(Allam)과 네 명의 아이들이(William, Lucas, Tomas, Fia) 학교에서 각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학교 소개를 들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학교의 수업보다는 공동체 생활의 의미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한다는 거였다. 이곳도 체육, 음악, 드라마(연극), 기업가정신 등의 전공이 있었지만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과목들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함께 살아가는 법이었다. 교장샘 애나는 이곳이 평등의 가치를 깨닫고 서로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라 이야기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삶의 태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대화-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줬고, 전공과목들은 개개인의 수준 높은 삶을 위해 배우는 거라 했다. 우리식으로 표현한다면 '공동체 시민의식 학교'라고 불러야 할까. 산다는 것의 핵심을 배우는 학교였다. 


우리나라도 공동체 교육을 이야기하는 곳은 많다. '공동체'라는 같은 단어를 쓰지만 그 의미가 덴마크와 많이 다를 뿐. 우리에게 익숙한 건 교훈이나 교과서 한 구석에 있던 '협동', '배려' 같은 단어다. 우리의 교육 속에는 같이 움직이는 조직으로서 공동체는 있었지만 서로 마음을 나누는 관계로서의 공동체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급격히 공동체가 사라져 가고 외로운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에서야 관계로서의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다행인 흐름이지만 내 눈엔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교육 현장의 공동체는 여전히 어른의 눈높이로 본 공동체가 중심이라는 점이다. 좀 진지하고 이성적인 느낌이랄까. 이곳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공동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설명 중 인상적이었던 말이 있다.


'함께 웃는 것만으로 성장할 수 있다.'


애나가 설명을 마무리하며 했던 이야기다. 그녀는 아이들이 그저 함께 하는 것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 자연스럽게 성장해나간다. 중요한 것은 그런 교류는 서로 마음을 열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관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관계의 기쁨이 성장의 시작인 것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하는 일의 본질이 함께 모여 웃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라 했다. 그 이야길 들으며 이 사람들 진짜구나 싶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공동체는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내용만큼 인상적이었던 건 애나가 굉장히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는 거였다. 우리에게 한 명 한 명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나 질문 답변을 하면서 그녀가 보여주는 말과 몸짓에서 그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날 같이 설명을 해주던 아이들 네 명 중 둘이나 이 학교설명회 때 만났던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이 학교를 오기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렇게 멋진 교장선생님이라니.


교사 앨런도 그의 역할과 선생님으로서의 목표를 이야기해줬는데 나는 그의 표정이 참 좋았다. 그의 만족하는 표정과 눈빛에서 그가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는지,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선생님이 즐거운데 아이들도 당연히 즐겁지 않을까. 그는 과목의 내용보다 아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야기 중간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들이 말하는 평등과 신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을 보며 선생님이 가진 에너지야 말로 가장 중요한 교육의 내용임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지식에 앞서 눈 앞의 어른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다. 그동안 잊고 있던, 내가 대안학교에서 선생님을 막 시작했을 무렵 제일 처음 배웠던 교육의 제 1원칙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설명하는 분이 교장샘 애나
덴마크어와 체육을 가르치는 교사 앨런 (by 오마이뉴스 정민규©)

학교 측의 배려로 이곳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에프터스콜레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을 때,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며 계발할 시간을 갖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좀 더 해보거나 경치가 좋아서(?) 등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좋았던 점에 대해선 모두 전보다 훨씬 더 깊고 친밀한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어찌 보면 흔한 대답이라 흘려들을 수도 있지만 이 시절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우리 어른들이 새겨 들었으면 좋겠는 대답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은 즐겁지만 단체 생활에서 오는 어려움과 불만으로 힘들 때도 있다고 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날들이랄까. 하지만 그 즐거움이 훨씬 크며 언제나 선생님들이 최선을 다해 살펴준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시 이 롤러코스터를 타겠다는 멋진 말도 했다.  


이런저런 질문들이 이어졌음에도 편하게 자기 생각들을 술술 이야기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by 오마이뉴스 정민규©)


설명이 끝나고는 체육관으로 이동해 이곳 친구들과 짧은 친선 축구경기를 가졌다. (같이 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님은 참 축구를 좋아하셨다. 군대 시절 병장님 같달까.) 체육관에는 이미 덴마크 아이들이 모여 신나게 몸을 풀고 있었다. 역시 서양 아이들은 팔다리도 길고 키도 컸다. 그런 아이들이 강슛을 날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착잡해졌으나(?) 오랜만에 뛰어보고 싶기도 해서 나도 참여했다. 이렇게 제대로 뛰어보는 것은 3년 만이었던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금세 숨이 차고 목구멍에서는 피 냄새가 올라왔지만 같이 뛰어 논다는 것은 참 즐거웠다. 다만 경기 시작 3분쯤 지나고서부터는 계속 나 자신과의 대결이었다. 우리는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뛰었고 아쉽게 15:0 정도로 졌다. 축구를 하면서 샌드백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축구가 끝나고는 이곳 학생들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학교 시설들을 쭉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사람과 철학 외에도 시설과 환경이라는 측면에서도 인상적인 점들이 많았다. 학교라고 하면 늘 자동으로 떠오르는 건 메마르고 답답한 느낌인데 이곳은 실내가 무척 쾌적했다. (뒤에 다시 한 번 이야기하겠다.)


점심 먹고 조금 지났을 뿐인데 벌써 날이 조금씩 기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덴마크의 겨울은 해가 짧아서 네 시면 해가 진다. 단체사진을 찍고 배웅 인사를 받으며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두 번째 방문할 에프터스콜레로 이동했다. 보고 들은 모든 게 경치와 어우러져 꿈같았다.



한국 사람은 거의 안경을 꼈고 덴마크는 모두 맨 눈 이었다. 이 때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by 오마이뉴스 정민규©)
나의 주된 관심사 였던 건축 - 식당의 천장과 조명.
점심. 여기 애들이 날씬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식당의 의자는 이렇게 테이블 아래에 끼워서 정리를 한다. 다리가 떠 있어서 바닥 청소가 한결 쉬울 듯.

덧1. 작년에 165명 중 두 명이 그만두었다고 한다. 성격적인 이유였던 같은데, 친구들이 너무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챙겨주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고. (니들이 한국에 있어봐야..)


덧2. 다음번엔 축구선수들과 함께 덴마크 탐방을 추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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