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떻게 그 오랜 세월 회사를 버티셨어요?”
나는 언젠가 아빠께 물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직장에 나가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의아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잠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냥 다니는 거지. 곧 그만둘 거야.”
남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회사를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뭐야?”
남편도 같은 대답을 했다. “그냥 다니는 거지.” 다만, 조금 더 캐묻자 이렇게 말했다. “나까지 안 다니면 안 되니까.”
결국, 버팀의 근거는 가족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작아졌다. 육아에 집중한다며 스스로 사표를 내고 나온 내가, 마치 철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후에도 기회는 여러 번 찾아왔지만, 그럴듯한 직장에서조차 나는 사흘을 채우지 못하고 걸어 나왔다. ‘프로 퇴사러.’ 내 이름 앞에 씌워진 낙인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그것은 단순한 의지 부족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 당시 생계에 대한 절박함이 없었다. 누군가 책임져주는 상황 속에서 ‘버틴다’는 의미는 내게 절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버틴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버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스스로의 꿈을 위해 버틴다. 이유는 다르지만, 버팀 속에는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
나는 이제야 그것을 배운다. 버티지 못한 시간을 부끄럽게만 여겼는데, 사실은 나에게도 버틸 만한 이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직 확실히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있다. 더는 ‘그냥 다닌다’는 말만으로 설명되는 삶이 아니라, 나만의 이유를 찾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버틴다는 것은 어쩌면 희망을 지키는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나의 이유 때문에, 그리고 지켜야 할 사람들 때문에, 오늘도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