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빛이 부엌을 적실 때, 나는 남편의 도시락을 싼다. 밥 위에 올려지는 반찬들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견뎌낼 그의 작은 위로다. 젓가락이 닿을 때마다, 나의 마음 한 조각도 함께 전해지기를 바라며 채소를 다듬는다.
프리랜서로 지내던 시절, 내 하루는 마감과 아이디어, 글과 사진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의 출근 시간과 아이의 하교 종소리가 나의 일과를 짜 맞추는 알람이 되었다.
세상과 연결되던 창은 닫히고, 집안일과 도시락이 대신 그 자리를 채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데도, 내 안의 색은 어쩐지 흐려지고 있다.
아이의 웃음은 햇살 같고, 남편의 발걸음은 저녁 노을처럼 고단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계절처럼 조용히 흘러간다.
여전히 가족의 중심에 서 있지만, 내 안의 목소리는 낮은 속삭임으로만 머물고 있다.
그래서 다짐한다. 남편의 출퇴근이 자리를 잡고, 아이의 시간표가 조금 더 안정되면, 나도 다시 길 위에 서리라. 작더라도, 단시간이라도, 나만의 일을 시작하고 싶다.
도시락에 김을 말며 속으로 되뇐다. “곧 다시, 나의 봄을 맞으러 나갈 거야.”
도시락은 결국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자 다짐이다. 매일 같은 모양 같아도, 그 안에는 작은 계절이 흐른다.
그리고 언젠가, 그 계절은 나를 다시 피어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