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좋아하는 편에 가깝다.
그래서 보육보조교사 일을 시작했을 때,
‘힘들어도 의미는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내 마음은 조금씩 닳아갔다.
아이를 돌보는 일보다
아이를 관리하는 방식이 더 익숙해져야 했고,
천천히 바라보고 공감하기보다는
빠르게 움직이고 즉각 반응해야 했다.
나는 원래
느끼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 움직이는 사람인데
보육 현장은 늘 그 순서를 허락하지 않았다.
보조교사라는 자리도 생각보다 버거웠다.
결정권은 없고, 역할은 모호했다.
잘해도 조용히 넘어가고
작은 실수는 바로 눈에 띄었다.
“나는 여기서 어떤 사람이지?”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자꾸 커졌다.
아이들 앞에서는 웃고 있었지만
퇴근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따라왔다.
몸도 힘들었지만
사실은 마음이 더 먼저 지쳐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린 걸까?’
‘사회성이 부족한 걸까?’
‘또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 된 걸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였다.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
보육 일을 잘 버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보육 현장은 사랑보다
속도와 효율, 통제가 더 중요한 곳이었고
나는 그 방식에 맞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깨달음은 실패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 한다.
보육보조교사가 나에게 맞지 않다는 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성향을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빛날 필요는 없으니까.
누군가는 아이들 곁에서 에너지를 얻고,
누군가는 조용한 공간에서
글을 쓰고, 기록하고, 생각할 때 살아난다.
나는 아마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이제는
‘버텨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를 덜 소모시키는 자리’를 찾고 싶다.
또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이 글은 그 방향을 인정하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작은 기록이다.
일단 계약한 3개월은 버텨야하는데 하루하루가 극기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