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는 말

by 달빛소나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날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결정하고 싶지 않은 날.

나는 말했다.

“돈 많은 백수 하고 싶어.”

사실 그 말은

돈이 많고 싶다는 뜻도,

정말 아무 일도 안 하고 싶다는 뜻도 아니었다.

그저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말이었다.

요즘의 나는

늘 선택지 앞에 서 있다.

보육보조를 계속할지,

농협 기간제를 갈지,

사서를 다시 준비할지.

현실은 빚이 있고,

남편은 지쳐 있고,

아이의 미래도 생각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자꾸만 계산기를 두드린다.

체력은 버틸 수 있을까.

또 금방 그만두고 싶어지진 않을까.

이번엔 오래 할 수 있을까.

머리는 현실을 말하고

마음은 자꾸만 도망가고 싶어진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는 사실 도망가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냥

쉬고 싶었다.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누군가의 직원도 아닌 채로.

아무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라는 질문이 없는 시간.

그게 필요했다.

나는 원래

조용한 사람이다.

시끄러운 공간보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더 좋고,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보다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편하다.

그런 내가

계속 버티려고만 했던 건 아닐까.

‘어른이니까.’

‘엄마니까.’

‘빚이 있으니까.’

그 말들 뒤에서

내 마음은 조금씩 지쳐갔다.

“돈 많은 백수.”

생각해보면

그 말 속에는 이런 바람이 숨어 있다.

생활은 안정적이면서

나는 자유롭고 싶다.

생계 걱정은 덜면서

내 시간은 지키고 싶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조용히 나답게 살고 싶다.

나는 게으른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고 싶은 것뿐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거창한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사서가 될지,

다른 일을 할지,

얼마를 벌어야 할지.

그건 내일 생각해도 된다.

오늘은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 많이 지쳤구나.”

“그래서 쉬고 싶구나.”

그 문장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숨이 쉬어진다.

어쩌면

돈 많은 백수가 되는 게 꿈이 아니라,

돈 걱정에 눌리지 않는 마음 상태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주 조금씩,

지금 여기서부터 연습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그 연습을 해보는 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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