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혁진 Mar 28. 2021

이직에 대한 고민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

요즘 IT 업계에 연봉 인상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업계 사람들과 지인들을 보고 있자니 연못처럼 평온하던 내 마음도 누군가 작은 돌을 던진 것처럼 어지럽혀져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초심 돌아보기

진부하지만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들 때마다 본인에게 근본이 되는 질문을 하나씩은 갖고 있는 게 좋다. 내가 갖고 있는 그 질문들 중 하나는 '나는 왜 개발자가 되었나?'이다. 전형적인 한국기업 문화를 벗어나 개인의 가치가 인정되고 온전히 '나'로서 일할 수 있다는 점, 그로 인해 일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고통의 수단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즐거운 활동이 될 수 있다는 점, 회사 외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나의 직업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 이러한 점들이 나를 개발자 길로 인도했고 그 길에서 나에게 돈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가치였다.


현실

이러한 초심을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날 것 그대로의 초심은 이상에 가깝다. 그리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이상은 실체가 없다. 따라서 나에게 고민으로 다가온 현실은,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지금과 비슷한 환경이지만 지금보다 훨씬 나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변에 많이 생겼다는 것, 내 멘티들이 나보다 훨씬 더 높은 보상을 받으며 취직한다는 것이다.


생각  

위 같은 현실적인 생각들이 겹치면서 한 때 나름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이제 갓 경력 2년 3개월이 되었을 뿐이고, 나의 팀원들을 사랑하며, 나의 리더, 리더의 리더, 리더의 리더의 리더를 모두 존경하고, 내 역량에서 배울 수 있는 최대치를 학습하며 성장하고 있는데, 이걸 다 버리고 주변과의 비교를 통해, 그것도 내가 부수적이라고 생각했던 가치를 위해 회사를 옮겨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연봉을 높이는 것도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전략인걸 잘 알고 있었고 지금 시장 상황이 좋은 기회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만드는 서비스가 세상을 리드하는 서비스라는 자부심 또한 느껴지는 서비스도 아니고, 그저 전통적인 대기업의 자회사라는 거대한 제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혁신이 없는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회사인데 굳이 남아있으면 호구가 아니냐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나는 당분간 이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가끔 내가 존경하는 개발자들의 커리어를 Linkedin이나 블로그, Facebook을 통해 유심히 본다. 그러다가 발견한 공통점이 있는데, 외국 개발자든 한국 개발자든 흔히들 말하는 '3년마다' 회사를 옮기는 케이스는 드물었다. 적어도 5년은 한 회사에 근무하거나 길게는 7~9년도 있는 케이스가 많았다. 왜 그럴까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김창준 님의 '몸값 안 올리기'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적어도 이직 후 5년까지는 전 직장의 퍼포먼스로 회복하지 못한다는 그로이스버그의 오랜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왜냐하면 성공의 원인에서 개인적 부분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인적 사회적 자원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도 알게 모르게 이전 회사의 인맥, 자원, 환경 등에 의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 퍼포먼스를 회복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이 글의 결론은 몸 값 올리기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이직이 사실 돈만보고 했을 땐 불행해질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나 또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글에 동의를 하게 됐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다른 환경을 가진 회사로 간다면 내가 잘하는 부분을 더 빛나게 만들 수 있을까? 내 역량은 든든한 나의 팀원들과 회사의 자원들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키워갈 수 있고, 이 기회를 버리고 돈을 위해 잦은 이직을 하게 된다면 나는 대표할만한 역량이 하나도 없는 그저 그런 개발자가 되어있을 확률이 크지 않을까? 몸 담은 곳에서 배울 점이 충분하다면 그곳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된 후에 이직을 하는 것이 더 커리어 상으로 유리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행복한데 자기중심 잃고 흔들릴 필요가 있을까?'가 핵심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미련한 사람의 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한들 어떠한가?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내가 선택하며 살아가는 건데 휘둘릴 필요는 없다. 선택에 후회가 없으려면 선택할 당시 추구했던 가치를 기억하면 된다. 타인과의 비교, 열등감은 끝이 없는 터널과도 같다. 비교를 하려거든 내 의지와 오늘의 나를 두고 하는 게 더 도움된다.  


내가 이직을 결심할 때는 아마 내가 추구하던 가치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을 때, 매너리즘에 빠져 항해하지 않고 정박한 배가 되었을 때, 존경하던 사람들이 이직을 할 때 일 것 같다. 이직은 사람 따라가는 것이 80%는 성공한다고 본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적응으로 인해 생존을 하지만, 반면에 적응으로 인해 지속 가능한 행복을 못 느끼기도 한다. 본인이 쉽사리 적응되어버리는 가치에 따라가는지도 점검해보는 것이 좋은 이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겠다.  


배는 정박해있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항해하는 게 목적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급성장 회사는 모터보트처럼 빠르게 항해할 수 있다고 치면 지금의 내 회사는 요트처럼 항해할 수 있다. 항구에 정박해있는 건 아니지만 천천히 주변을 느끼며 항해와 행복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결과가 아닌 과정인 점을 생각해보면, 과정을 온전한 시각으로 느끼는 것이 빨리가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일등은 못한다는 게 함정이다.


난 내가 취직하면 윗사람들을 욕하는 사원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윗사람의 윗사람들까지 모두 존경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 생각엔 이런 Best Practice 같은 상사 라인은 어딜 가도 다시 만나긴 힘들 것 같다. 최대한 배우고 누려야하지 않을까.


 "친구가 SKY 대학교에 갔다." 여기에 열등의식이나 부러움을 느끼던 사람들은 이제  나이가 되어서는 그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가까이 보이는 이득과 타이틀을 위해서 사는 삶보다 그보다 근본적인 것을 쫓는 삶의 비전이  빛나고 롱런할  있다. 같은 대학이어도 전공이 무엇이냐에 따라 차이가 매우 크다. 비전은 타이틀로부터 오지 않는다. 약간의 도움은 있지만 본질은 타이틀이 아니라 업이다. 회사에도 비슷하게 적용해볼  있다. 간판 좋은 회사를 가더라도 하는 일이 별로면 주니어 때라도 탈출해야 한다. 타이틀이  먹여 주지 않는 세상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무엇이 근본적으로 쫓을 가치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