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차 사회인
26년 만에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의 목표는 그저 막연하게 '한 해를 되돌아보자'였지만, 그간 기록해놓은 글들이 꽤 쌓여 있었고, 읽었던 아티클들과 새롭게 깨달은 지식들이 산재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이것들을 정리해서 기록해보자'라고 생각을 바꿨다. 훗날 이 글을 다시 읽게 될 나 자신과, 스쳐 지나가듯 글을 마주하게 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2019년을 빗대어 표현해보자면, ''번데기에서 우화 하여 갓 성충이 된 나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갓 날기 시작했을 뿐이지만 그만큼 뜻깊은 한 해였고, 나의 삶에 큰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꿈만 꾸던 학생에서 어느덧 사회인이 되었고, 몇 번이고 자질을 의심하며 낙담했던 학생에서 1년 차 개발자가 되었다. 이렇게 여러 주제로 말할 수 있는 내 1년을 사회인, 개발자, 멘토, 사람이라는 4가지의 주제로 나눠 서술해보려고 한다.
25년간 반도의 남쪽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서울 살이란,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을 상상하는 것처럼 간절히 바라는 소망 같은 것이었다. 취직하고 처음으로 서울로 상경했을 때, 그때의 기분은 정말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 심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완전히 독립을 하고, 내가 살아보고 싶었던 지역에서, 내 힘으로 부딪히며 산다는 게 어찌나 좋던지. 무엇보다 평생을 고생하신 부모님 또한 나에 대한 걱정을 덜고 자식으로부터 독립을 하셨다는 것이 나의 만족에 크게 일조했다. 그리고 무언가에 엮여 있지 않고, 자유로운 개체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갓 우화 한 나비가 된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스스로 집을 구해보는 과정이나 재무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막연한 두려움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경제에 대한 무지를 어느 정도 필요성을 느끼며 공부해 걷어낼 수 있었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공부할 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면 학습에 대한 즐거운 감정이 생기지 않고, 그로 인해 학습 효율 또한 떨어진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늘 뒤로 제쳐두었던 것들을 필요성을 느끼면서 어느 정도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독립의 중요성을 느꼈다.
무언가에 기대거나 의지를 하면 그 부분에 대한 학습 욕구나 생각할 여지가 쉽게 생기지 않는다. 의지하던 것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세상을 마주하면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독립을 함으로써 내 처지가 급격히 불안정해지고 불행해진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결국 배움과 성장도 다 잘 살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독립을 해야 한다', '최대한 독립을 늦춰야 한다' 이 중에서 정답은 없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저울질을 잘 해서 판단하면 된다.
입사 초기에 미생을 보았다. 미생을 보면서 크게 와 닿았다기보다 부끄러웠던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 맛에 상사맨 하지!'라는 대사를 들었을 때였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입사 초기에 나는 제조업이나, 공기업, 영업직,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에 대한 흥미가 아니라,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서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싫어했다. 개발자라는 직업을 택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일생의 대부분을 일하며 보내야 하는데 그 순간이 스스로 만족스럽고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위 직종들에서는 회사에 강하게 종속되어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고 내 멋대로 판단하고 단정 지어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전파까지 하고 있었다.
미생이 비록 현실을 그대로 말하고 있지 않다고 해도, 나에게 생각을 정정할 기회를 선사해주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직접 경험해보지도 않은 세계를 단편적인 정보들을 바탕으로 일반화시키고 그들의 노력과 가치를 깎아내리는 행동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었고, 미생을 통해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는 나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경험한 개발자와, 작품에서 그려낸 상사맨 사이에는 겹쳐 보이는 모습이 많았고, 다른 직군 또한 마찬가지리라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겐 그저 재미를 위한 소비재로 여겨질 수 있는 영화, 드라마, 만화 등에서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충분히 본인의 시야를 넓히는 데에 사용될 수 있고, 하나의 레퍼런스, 하나의 정보로써 사용할 수 있다. 올해는 소비재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 좀 더 곱씹어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덕분에 한 해를 좀 더 밀도 있게 살 수 있었다.
꽤나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성격을 가진 나에게는, 진보와 보수로 편을 나누고 세상이 양분화되는 것이 제일 이해하기 힘들고 멍청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안철수 씨의 '저는 상식 파입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세상 사람들이 다 비웃을 때 우문현답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광주 출신인 나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머리가 점점 커질수록 의문이 생겼고, 중립의 입장에서 인터넷과 세상을 오랫동안 바라보니, 진보나 보수나 집권을 하기 위해서 혹은 집권을 하였을 때 하는 행동이 똑같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 머리가 커가는 속도보다 언론의 트래픽 욕심이 증가하는 속도가 훨씬 빨랐으며, 세상은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는 말에 여전히 크게 휘둘렸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진보와 보수 중 누가 정의인가를 논할 때 나는 답을 알 수 없었기에 항상 침묵하려 했고, 이러한 정치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눈에 보여서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답답함만 느끼고 있었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 때 철학을 부전공하여 근본적인 물음에 다가가려 했으나, 그 과정에서 배움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무언가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여전히 나는 벙어리였다.
그렇게 나는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질문들이 직접적으로 나에게 오면 웃음과 가벼운 멘트로 회피하면서 지냈다. 이것이 좋지 않은 자세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압축된 내면의 답답함을 한 순간의 언어로 함축시켜서 표현할 능력도 없었고, 표현을 한다 하더라도 답답함은 여전하고 스트레스만 더해져서 굳이 나는 표출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런 와중에 어느덧 사회인이 되었고, 지방에서 겪던 평화로움과 달리 다양한 개성들이 모여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 서울에 살게 되었다. 자그마한 고철로 바라보고 고민해왔던 세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니 좀 더 세부적인 문제들이 보였고, 2019년은 그런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차근차근 내 답답함을 한 겹씩 덜어내 보려고 노력한 해다.
세상엔 정치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진보와 보수가 존재한다. 특정 기술에서도 진보와 보수가 있고, 비즈니스에서도 진보와 보수가 있다. 최근에 이슈가 된 타다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스타트업계와 기술 관련 종사자들은 당연히 미래를 생각하며 진보적인 주장을 외친다. 반면에 기존 산업 종사자들은 당연히 현재를 생각하며 보수적인 주장을 외친다. 더 깊게 서로의 입장에 대해 들어가서 잘잘못을 따질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옳고 그른지 결론을 내지 못하였다. 다만, 나의 답답함을 한 겹 덜어낼 수 있는 생각은 해볼 수 있었다. ''이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안철수 씨가 말한 '상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진보와 보수의 핑퐁만이 존재하고, 그것이 불완전한 인간으로 구성된 세상을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 작은 깨달음이 한 겹의 답답함을 걷어내 주었고, 진보와 보수 간의 다양한 갈등들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갈수록 많은 분야에서 진보는 선, 보수는 악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기득권들의 헛발질이 한몫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적인 발걸음이 국가를 나아가게 만들고, 인류를 진화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기만 하는 것은 소외를 만들어낸다. 소외는 따라오지 못한 사람의 잘못인가? 그렇지 않다. 그 누구도 소외된 사람들을 탓할 수 없다. 현 인간 사회의 중요한 책무는 그러한 소외 계층의 삶도 고려하여 그들도 함께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아가는 것 또한 모두의 삶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에 진보도 중요하다. 결국 둘 다 챙길 수 없기 때문에 마치 모래성을 쌓듯이, 진보가 모래를 한 차례 뿌리면 보수가 성을 다지고,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하여 튼튼한 모래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사이좋게 한 차례씩 번갈아가는 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러므로 모래를 뿌릴 차례인지, 성을 다질 차례인지는 그 상황과 필요에 맞게 사회의 구성원들이 잘 선택을 해야 한다. 세상엔 무조건적인 정의도 상식도 없다.
'회사와 직원들은 어느 곳을 가던지 서로 상충되는 이익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회사와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는 서로 한 방향을 바라보며 윈윈 할 수 있겠지만, 회사와 대체 가능한 일반 직원들은 서로 상충되는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전문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자, 본인의 전문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터전이자, 그로써 본인의 사회적 가치가 평가되고 그 평가대로 보상을 받는 곳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건, 대체 가능한 직원일 뿐인데 본인의 권리가 크다고 생각하는 것. 세상은 착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어떠한 추상적 집단이든, 개인이든, 본인의 생존을 위해 투쟁할 뿐이다. 자선 따위는 바라지 않고 경쟁력 있는 전문가로 나아가서 스스로 요구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가 올해 초까지 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더 많은 경험을 하며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깨달은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너무나도 많고, 그 속에서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도 다르다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120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모두가 전문가를 꿈꾸면 기업 입장에서는 좋겠지만,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를 꿈꾸고 싶어 하진 않는다. 일은 단순히 급여를 받기 위해 하는 것이고, 본인의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도 많다. 일을 이렇게 여기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사실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인간 사회를 구성함에 있어서 일에 대한 개인의 전문성은 그 사회의 삶의 질과 직결되어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한 질서를 개선하기 위해 개인의 역량으로 공정하게 평가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데, 각자의 다양한 삶 속에서 일에 대한 가치가 점점 비중이 낮아지는 시대에 좋은 사회가 형성될지 의문이 든다. 고로 나는 인간사회의 개인화 추세가 그다지 장밋빛 같지 않아 보인다.
아직 잘 모르겠고 2019를 마무리하는 시점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회 속에 몸을 담근 지 어느덧 1년이 되었지만, 관련된 어느 고민 하나 제대로 결론짓지 못했다. 아마 생각에 생각을 더하면서 죽을 때까지 결론짓지 못하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지만, 이 과정을 통해 갈수록 다양해지는 세상 속의 이해관계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