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golife May 14. 2019

미국오면 눈 뜨고 코 베인다.

돈, 잘 쓰는 게 참 어렵다. 

서울오면 '눈 뜨고 코 베인다'라는 말이 근래 들어 실감난다. 

물론 장소는 바꼈다. '미국오면 눈 뜨고 코 베인다.'


미국은 정말 눈 뜨고 코 베이기 쉬운 곳이다.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먼저 해주는 적이 없다. 

뉴욕에서 텍사스로 이주하면서 이사짐 트럭, 인력 선정부터 전기세 납부. 그리고 이주 온 뒤 갔던 응급실 비용까지. 모두 눈 뜨고 코 베일 뻔 했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저번주 금요일 저녁 우편물을 확인하다가 머리 쥐어 뜯을 일이 있었다. 바로 응급실 청구서. 


나는 두달 전 응급실 한번 다녀오고, 한달 전에 5-6개의 Bill (청구서)를 받았다. 약 8천불의 금액. 하필 이직하면서 보험 없을 때 딱 응급실 갈 일이 있었어서 이 비용은 내 피 같은 돈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구글링을 하며 이 돈을 어떻게 낼까 싶었던 나는 '깍아보기로 했다.' 병원비를 깎는다는 게 참 이상해보일 수 있는 일이다. 그것도 종합병원의 응급실에서 나온 비용을. 하지만 나는 45% 깎았고, 나머지는 할부로 내겠다고 하자 또 20% 할인을 받았고 일시불로 내기로 했다. 그렇게 모든 빌을 깎았고 (물론 안 깎아준 빌도 있었지만) 전체 금액이 반으로 줄었다. 이 일이 일어난 게 2주 전이었고, 난 2주 전에 모두 결제를 마쳤다. 그런데 저번주 금요일 우편물에 20%할인 해준 금액을 청구하는 빌이 온 것이다. 금요일 밤이라 지금 당장 전화할 수도 없고 월요일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금요일 우편물 중 또 다른 우편물은 황당했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바로 전기세. 뉴욕에서 썼던 전기세였는데 우리가 마지막 달 금액을 더 냈는지 체크로 일부 환불이 되어 왔다. 뉴욕에서 텍사스로 이주오면서 뉴욕에서 마지막 달 전기세를 내고 전기를 끊었었다. 사실 마지막 달은 텍사스를 왔다갔다 하고, 이미 이사짐을 모두 쌌던 터라 전기를 거의 쓰지 않아서 우리는 평소 전기세의 반 정도를 기대했는데 2배의 금액이 청구되어 날라왔었다. 정말 황당해서 전화를 해서 설명하니 그건 측.정.된 Estimated 금액이란다.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고, 지금까지 이런 빌이 날라온 적도 없었다. 참나. 그리고 곧 실제 금액으로 빌을 보낼거란다.......실제 금액 역시 평소 전기세 비슷하게 나왔었지만 정말 치를 떨며 그냥 냈다. 근데 이렇게 새로운 집으로 체크를 보내주네. 반갑기보다 머리 아픈 그 순간이 먼저 떠올랐다. 


이 외에도 우리가 미리 말하지 않으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할인 혜택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오히려 바보같이 더 내야하는 경우가 많다. 후덜덜한 병원비를 누가 깎을 생각을 했을까... 한국은 빵집만 들어가도 할인카드 없냐고 물어봐주는데 미국은 그런 거 얄짤없다. 오히려 고객이 할인 정보를 아는 경우가 더 많고, 문의를 하면 그 대답 듣느라 매니저 부르고, 위에 또 부르고 난리.;;;;; 


그래서 돈 한번 크게 나갈 일이 있으면 꼼꼼하게 알아보고 가고, 당연한 비용이 나와도 혹시 이거 깎아줄 수 있니 라고 문의전화라도 해보게 된다. 미국은 시스템이 갖추어져있기보다는 사람에 따라 해결 방법이 달라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어떤 상담원한테 문의했을 땐 죽어도 안 된다고 했던 게, 다른 상담원한테 전화를 바꿔주자마자 시원하게 해결이 된다. (이미 다 되는 걸 알고 전화를 했지만 그 상담원이 그 내용을 숙지하지 못하면 '안되' 라는 대답을 듣는 게 부지기수.)


이쯤 되면.....돈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돈도 잘 쓰고 싶다. 아끼는 것만이 답은 아니고, 최대한 딜을 해보고 그 다음에 돈을 쓰는 것. 현명하게 쓰는 게 아니라. 돈은 돈답게 써야 하는 것 같다. 돈. 자본주의의 방식으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후, 쉬는 것에 대한 민망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