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은 작가로

글쓰기와 나


초등학교 일 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내 동생’이란 제목으로 시를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밑의 동생들이 말을 죽어라 듣지 않아 누나로서 권위가 서지 않던 나는 이때다고 동생에 대한 불만을 적었다. 며칠 뒤에 내가 쓴 시가 우수작으로 뽑혀 교실 뒤편 게시판에 걸렸다. 그때였을까, 글을 쓰며 살아야 한다는 신의 계시를 예감한 것이. 살아가며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큰 의미가 되어 나머지 삶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쓰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그즈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신 책을 읽고, 또 읽고 좋은 구절을 마음에 품고 서성이는 동안 책 속의 주인공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작가의 삶을 상상하는 사이에 가슴에 무언가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공책이 필요했다. 일기장은 좋아하던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로 가득했고 좋은 구절이 마음에 박히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는 쾌활했지만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나는, 원인 모를 외로움과 허허로움에 내몰렸다. 방황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문학은 목매다는 것이지 액세서리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동의했지만 쉬지 않고 쓰는 노동을, 무거운 엉덩이를 갖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왜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

아니 나는 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기쁨을 주고 싶기 때문이지. 도대체 네가 원하는 감동과 기쁨이 뭔데, 그렇게 스스로 묻고 답하다 보면 내가 글을 써야 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굳이 내가 쓰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더 좋은 글을 쓸 테고 나는 독자로 남아 그 글들을 기쁘게 읽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책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만그만했던 글들이 치기가 빠지고 진솔했고 깊이가 생겨난 데다 아름다워지는 모습을 보며 솔직히 기쁘지 않았다.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향해 좋은 독자로 남는 일도 쉽지 않다고 비아냥댔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썼고 나는 중간중간 멈췄다.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 직면하기보다 늘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나의 밥벌이가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 일만도 힘겨웠고, 내가 지금 하는 일도 잘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두 개를 다 잘할 수는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위안을 얻었다. 교사로서의 삶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은 길에 늘 목말랐지만 언저리에서 서성댔고 정곡을 찌르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글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나는 불행했고 이루지 못한 문학에 대해, 나의 열망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다. 이미 두 번의 기회를 놓친 나로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가 버린 시간, 읽어야 할 소중한 문장들, 지난날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나를 조급하게 한다. 그러나 급할수록 바늘허리 매어 쓰지 못한다는 속담을 기억하고 싶다. 이젠 멈추지 않겠다. 언저리에서 맴돌지 않겠다. 나는 작가로 살고 허기진 사람에게 따뜻하고 한 술 밥 같은 좋은 글을 쓰리라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