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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에서의 마지막 커피

며칠 전부터 엄마가 식사를 못 하신다. 어떤 날은 온종일 음식은커녕 물도 못 드시고 또 다른 날은 아주 조금 미음을 넘기시기는 한다. 지난주에 가서 뵐 때는 눈도 뜨고 말도 하며 음식도 드시고 했는데 이번 주에는 아예 눈을 뜨지 못한다. 우리가 불러도 눈을 뜨려는 움직임만 보일 뿐이다.


이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지도 좀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발이 땅으로 푹푹 꺼지는 느낌이 든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길이 갑자기 어디가 어딘지 가늠할 수 없고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그런 현상이. 사실 지난 1월에 병원에 응급 이송될 때만 해도 엄마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인간은 태어나서 언제 한번은 죽기 마련이지만 그 대상이 내 가족이나 특히 엄마일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엄마에게 다녀오면 나도 일상이 뒤틀리고 기운이 없어져 누워지내는 날이 많았다. 순간순간 쇠약해지는 모습과 죽음이 한 인간의 삶을 장악하는 시간을 무기력하게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아쉽기만 하다. 아무것도 의미 없고 소중한 이의 죽음을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이 속절없고 원망스럽다. 지난날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한탄이 번민으로 끓는 시간을 견뎌내는 게 요즘의 일과다.


내가 생각했던 관념적인 죽음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죽음은 거뭇거뭇한 눈두덩에 내리 덮인 주름과 함께 오고 퉁퉁 부은 하얀 손가락처럼 창백하다. 온몸이 부어 딱딱한 살을 만지는 걱정과 슬픔 속에 자리 잡은 죽음은 오래지 않아 노인을 덮칠 것 같다. 무력하게 그 순간을 기다리며 바라보는 것이 산 자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엄마를 보러 가는 아침에 평소 좋아하시던 커피믹스를 탔다.

끓인 물을 붓고 잘 저어서 충분히 열기를 식힌 다음 입에 넣어도 괜찮을 온도에 맞춰 보온병에 넣는다.

어쩌면 엄마가 지상에서 맛볼 마지막 커피.


그 커피를 보온병에 넣으며 한 사람의 생애를 생각한다.

병에 따르는 그 짧은 순간, 내 엄마의 생애는 주르륵 흘러내린다.

달달한 커피. 달달한 생의 향기가 마개로 닫히면 죽음이 다가설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를 넘기지 못하셨다. 주사기로 입에 커피를 넣었지만 이내 흘러내렸다.

얼마 전까지 하루에 두 잔을 기쁘게 마셨던 엄마가 아니던가.

좋아하던 커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무너진다.

감긴 눈과 부어오른 손. 청각이 마지막까지 살아있다는 말을 믿으며 엄마에게 말을 건넨다.

아직은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불현듯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올까 봐 마음 졸이며.



엄마의 손발을 주무르며 귓가에 속삭인다.

지난 세월, 엄마의 딸로 살아서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내가 누린 최상의 행복이라고.

그러니 이제 마음 편히 가지시라고.

우리는 열심히 살아갈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엄마를 두고 집으로 왔으나 나의 마음은 거기에 남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떤 생각은 예언처럼 맞아떨어진다더니. 이승에서의 마지막 커피가 맞았다.

그래도 커피를 가져다드린 건 잘한 일이다.


다음날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어제 장례를 치렀다.

날이 흐렸지만 좋았고 모든 것이 감사했다.

엄마는 하늘로 가셨지만 나는 아직 남았다.

어떻게 살아야 엄마가 기뻐하실까.

울고 추억에 지쳐 무너지는 걸 원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장례예배 때 부르던 찬송가처럼.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훈계로써 인도하며 도와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때까지 계심 바라네.

나는 오늘 무심히 창밖을 보며 믹스커피를 마셨다.

엄마가 옆에서 같이 커피를 마시는 것 같았다.

“참, 좋구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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