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기대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담임을 맡게 되면 학기 초,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학생 파악이다.

그러기 위해서 기초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그 자료의 내용은 아직도 학생들이 스스로 작성해 주는 ‘기초 환경조사’에 의존하고 있다. 자신이 적어내는 가정의 상황(부모님 이름, 동거 여부, 다른 가족 소개, 부모님과의 친밀도, 혹시 학비감면이나 급식지원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가정의 경제적 형편 파악)과, 자신의 희망 진로, 꿈, 성격(장점과 단점), 희망하는 대학, 교우관계, 통학거리와 소요시간, 건강상태, 현재의 고민, 그 밖에 담임이 알아야 할 사항 등을 토대로 해서 3월 한 달간 방과 후에 학생들과 일대일 상담을 한다. 한 학급에 최근까지 학생들이 30명 가까이 되었기에 매일 야근을 하며 학생들과 상담하면 3월이 빠르게 지나가곤 했다. 그 사이에 학부모 총회가 열리니 상담한 내용을 가지고 학부모님과 또 상담을 하는 일이 빈번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를 돌이켜보자면 전화, 텔레비전, 냉장고가 집에 있느냐의 여부에서부터 방이 몇 개고 자가인지 아닌지도 그야말로 시시콜콜히 적어가야 하는 ‘생활 조사서’ 같은 것이 있었다. 지금이야 인권 침해다 뭐다 해서 언감생심 그런 질문을 하기 어렵지마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인 70년대에는 그런 것들을 적어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담임을 하던 초창기에도 그런 것을 적어내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유치하게 집안의 가전제품 등을 나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의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심지어 집의 약도(그 약도를 보고 가정방문을 하던 기억도 난다.)까지 상세하게 적어내던 시절. 부모의 직업으로 대략 가정 형편을 파악하기도 하고 월수입, 가정의 형편을 상, 중, 하로 나누는 항목이 있었기에 그 항목을 통해서 가정의 경제적 상황을 짐작하기도 하고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기 때문에 알려고 들면 가정의 신상명세가 고스란히 담임의 손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주민등록 등본은 1학년 입학 시에 그것도 생활기록부에 주민등록번호를 정확히 기록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을 뿐 나의 경우 철해놓은 등본을 펼쳐본 적은 없었으니 다른 담임들도 마찬가지이리라.



학생을 상담하며 내가 제일 중점을 둔 내용은 학생의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과 부모님이 가진 학생에 대한 기대에 있었다.

학생의 상황과 무관하게 부모의 기대가 지나치게 큰 경우 학생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매사에 예민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온순해 보이는 학생일수록 부모님의 기대에 눌려 있는 경우가 많았고 겉으로는 온순해 보이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부모에 대한 적개심이 자신도 모르게 싹트고 있었다. 부모의 기대는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욕구로 보이나 기대가 아이에게 짐으로 작용할 때 그 효과를 상실한다. 결국 부모의 기대와 아이의 기대가 따로 놀고 둘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만들게 된다.



학생과의 상담을 통해 이런 내용을 감지하면 좀 더 긴 시간을 들여 학생과 대화를 나눈다.

이때 담임이 상황을 아는 체하거나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 대화의 맥이 끊긴다. 학생이 좋아하는 게임이나 관심 있는 만화, 드라마, 친구들 이야기를 소재로 해서 어느 정도 친밀감이 형성되면 현재의 고민을 나누고, 고민 중에 공부에 대한 것이 나오면 슬쩍 본론을 꺼내 본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재 자신의 처지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죄책감과 미안함, 무능함을 느끼지만 성적이 오르거나 하는 현실 상황에 변화가 없을 때 미안함보다 자신의 무능함이 극대화되어 그 화살을 부모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 본질은 미안함인데 표현은 반항기로 표출되니 부모 입장에서는 적반하장이 따로 없는 것이 된다.



학생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이런 내용을 가지고 부모님과 상담을 해도 되겠냐는 허락을 구한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허락을 구하지 않고 상담을 했을 경우, 아이는 담임에게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난 당신을 그래도 믿었는데, 결국 당신도 우리 부모와 같은 어른이었군’하고 말이다. 아이의 동의를 얻은 후 비밀 보장을 약속한다. 부모와의 상담에서는 담임이 관찰한 아이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아이의 진로에 대한 부모님의 희망사항을 들어 본다. 그 희망이 아이가 원치 않는 방향이거나 과도할 때 기대치를 낮추는 조정이 필요하다. 담임의 요구에 바로 상담에 응하는 학부모님의 경우 학생에 대한 관심이 많다.

기대치를 조정할 때 객관적 자료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료를 해석할 때 지나치게 비관적이거나 낙관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부모님이라고 왜 할 말이 없겠는가. 기대가 어그러진, 상실감에 대한 하소연을 들어주고 다독이는 것도 담임의 몫이다.



아이가 망가지고 힘들어지는 것을 원하는 부모는 없다. 또한 부모에게 작정하고 반항하려는 학생도 드물다. 처음에 ‘기대’는 아이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으나 기대가 좌절될수록 부모와 학생의 관계는 멀어진다. 그러니 해법은 아예 기대를 내려놓는 것일까? 부모님에게 아이에 대한 수용선을 조금 더 낮추시라고 권한다.

기대치가 낮으면 실망도 적고 감사와 기쁨이 뒤따른다. 서로 간에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막혔던 감정의 벽이 허물어진다.

식물을 길러 본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사랑해서 물을 많이 주면 결국 죽어버리는 것을.



부모의 기대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이다. 아이와 기대를 바꾸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 두 개의 길이 있다면 당신은 어느 길을 걷겠는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사랑하는 고정희 시인의 시 한 편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고정희 / 사랑법 첫째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이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를 잃지 않기 위하여

내 외롬 짓 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가슴 한 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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