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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 입성기

나는 종이책 애호가이다. 종이책만이 가진 무게감과 부피감 때문이랄까. 손 가득히 만져지는 책으로 인한 충만감이 종이책을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그다음은 새 책이 주는 향긋한 인쇄 냄새와 오래된 책에서 맡을 수 있는 묵은 추억의 냄새를 좋아한다.

책을 열면 추억이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고 놔주지 않아서 그 손에 이끌려 나는 무수히 많은, 가 보지 않은 길을 걸었다. 우리 부모도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어서 아이가 책을 좋아하니 일단 검증된 내용의 책은 거의 사 주셨기에 어린 시절 책에 대한 결핍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부모님이 사 준 책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책을 산 것은 중학교 이학년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학교에 큰 가방을 들고 책을 팔러 다니는 분이 있었고, 각 교실을 돌며 책 소개를 하는데 유독 나에게 그분이 설명을 자세히 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책을 살 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때 내가 산 책은 ‘프랑수와즈 사강 전집’이었다. 총 6권으로 된 이 책은 당시로서는 중학교 학생이 지불하기엔 꽤 거금이었는데 할부가 된다기에 덥석 사게 된 것이다. 구매 의사를 밝히고 서류를 작성하고 나서 바로 내 손에 책이 쥐어졌다. 그때의 기쁨과 당혹감이라니. 내 생애 처음으로 책을 산 것이니 기뻤지만 할부 개념이 뭔지 잘 모르는 중학생에게 외상으로 책을 산다는 의미가 부모님께 어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뒤늦은 걱정이 복합적으로 스며왔다. 더구나 사강이라면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작품밖에 들어본 바가 없었는데 이 책이 과연 내게 필요한 책일까, 하는 생각이 집으로 가는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때마침 비가 세차게 내렸고 책을 젖게 할 수 없었기에 온몸으로 책을 감싸고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책은 다른 세상을 보게 하고 경험하게 하며, 생각을 전달한다. 모든 작가에게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데, 그것이 위대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내용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자 하고 그것이 책의 가장 기초적인 목적이라 생각한다. 그중, 위대한 정신이 남고, 알려지고, 세상에 유통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좋은 책으로 남을 확률도 높다.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내용을 작가의 개성을 통해 창조적으로 표현한 내용의 책 말이다.

사강의 책을 내가 다 읽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 읽다가 어려워서 접어두었을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첫 책이 사강의 책이었다는 점이 요즘 내게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다. 그 뒤로 많은 책을 사고 읽었다. 새 책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책꽂이에 꽂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읽지 않아도 읽은 듯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으로 살 수 있었다. 내가 책을 사는 이유이다.




어느 날 문득, 서재를 가득 채우고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쌓이고 널브러져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책들을 보면서 이제는 책을 정리해야 될 때가 왔음을 알았다. 상자 안에 모셔져 몇 년 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으나 크게 필요하지 않은 책, 대학교 전공 도서로 지금껏 모셔왔으나 볼 때만 뿌듯한 책, 한번 읽었으나 더는 읽을 것 같지 않은 책 위주로 모으고 혹시 마음이 변할까 봐 책을 수거해가는 트럭까지 예약했다. 마음이 아파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대략 천 권 남짓한 책이 내 곁을 떠나갔다. 보낼 때는 후회도 살짝 들었지만, 여백이 넉넉한 책꽂이를 보니 마음이 후련했다.

그 후에도 책을 사고 모으는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전자책을 권했다. 그러나 습관은 얼마나 무서운가. 화면으로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을 마다하고 나는 여전히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고 반납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책의 손맛을 느끼기 위해 소장하는 즐거움도 기꺼이 누렸다.



스무 권이 넘는 책을 빌리고 사서 집으로 옮기던 어느 날, 책 욕심도 집착의 다른 이름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화면으로 보는 책은 읽을 맛이 적어요. 안 좋은 눈 더 나빠지기 십상이지. 그 깨달음 후에 나는 페이지를 넘기며 사각대는 종이의 질감을 과감하게 버리고 앱을 깔고 화면 앞에 앉았다. 문고판보다 조금 큰 패드에다도 앱을 까니 움직이는 서고가 생겼다.

가장 좋은 점은 일단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책꽂이가 생긴 것이고 내 취향이 아니어서 돈 주고는 사지 않을 다양한 책들도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다. 도서 앱 속의 내 서재에는 많은 책이 있지만 무겁지 않아서 좋고 면적을 차지하지 않아서 좋고, 언제 어디서나 보던 페이지를 바로 찾아 주어서 좋다. 그럼에도 책장을 넘기던 추억이 있어 아쉬움은 남는다.


공강 시간에 자주 가는 학교 도서관엔 아이들이 적었다. 늘 보던 아이들 몇몇이 와서 책을 고르고 있을 뿐, 아이들은 책을 읽는 대신 게임과 영화와 웹툰을 즐겼다.

작은 모바일 화면 속에 모든 것이 있었다. 그 작은 화면을 쳐다보며 아이들은 온 우주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문자가 아니라 영상이 글을 대신하는 시대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은 여전히 흘러가고 아이들은 점점 책에서 멀어져 간다. 전자책이 혹시 대안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보지만 책을 읽지 않는 세대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느낀다.




하지만 멀어져 가는 것이 어디 책뿐이랴?

우리는 옳고 그름과 지와 덕과 세상을 따뜻하고 바르게, 살 만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서 차츰 멀어져 가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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