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노동자, 교사2

민원이 거세질수록 그녀의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아이들은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을 외면했다. 표면상 수업은 진행되고 있었지만, 대부분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칠판에 판서하며 아이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녀와 눈을 맞추는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의 몸에서 풍기는 냉기는 그녀의 마음을 위축시켰다.

학교에서는 그녀의 문제를 두고 회의를 열었다. 매사에 원칙주의자이고 냉정한 교장 선생님이 그녀에게 휴직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녀는 생계유지가 곤란한 부모와 아직 대학에 다니는 동생을 부양하는 중이어서 휴직을 할 수 없었다. 휴직할 형편이 아닌데도 자꾸 휴직을 권하는 조직의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곳은 늘 그렇듯 기다려 주는 곳이 아니다. 기다리기는커녕 성과가 바로바로 보이지 않으면 채근을 하고 은근한 압력이 들어온다. 아니 은근한 압력이 아니다. 대놓고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교과 내용을 몰라서도 아니다. 다만 아이들을 대할 때 갑자기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멍한 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어느 순간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는지 모를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최근 목소리까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전에는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아이들 앞에 서면 환히 비치는 유리벽 안에 갇혀버린 느낌이 든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갇힌 듯하다. 아이들은 그녀를 향해 무언가를 던진다. 물체를 맞은 유리벽이 깨지고 부서진 조각이 소리를 내며 떨어져 더 잘게 부서진다. 그 작은 조각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라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면 몸이 움츠러들면서 입에서 나오려던 말도 웅얼거리게 된다. 다만 그뿐이다. 그녀도 아이들 앞에서 말을 얼버무리는 자신을 이해하기 힘들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요.”

교장은 학부모의 민원에 있는 말을 반복했다.

이 상태론 아이들 앞에 서는 게 힘들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녀의 거취는 어떻게 되는가?

휴직을 권하는 이들 앞에서 그 어려움을 말하자 분위기는 더 냉랭해졌다.

“수업은 개판인데 휴직도 하기 싫다니.”

회의에 모인 사람들의 미간이 좁혀졌다. 삼십 대 중반의 여자 교사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모인 이들의 눈동자가 매섭다. 아무도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거나 대변해주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수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소통도 하지 못하는 루저 교사에 불과하다.

“선생님. 내 말 들려요?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고요.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게 생겼어요. 휴직하든 병가를 내든 일단 수업을 계속하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평소 차갑고 할 말을 군더더기 없이 내뱉는 교장의 말이 계속되었다. 거기에 모인 단 한 사람도 그녀의 입장을 배려해주거나 대신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발령받고 3년이나 근무한 학교였다. 아무리 마음을 터놓은 친한 사람이 없다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이 사달이 나기 전까지 그녀는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가르쳤다. 아니, 그건 그녀만의 생각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입장은 또 다를 수도 있다고 처음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 보며 말을 이어나가기가 왜 그리 힘든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현상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일 년 전 그녀가 낸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민원이 있었고 대학 진학을 앞둔 3학년 시험이기에 그 예민함이 더 컸다. 전교 3등 하던 아이가 그 문제를 틀렸는데 그것만 맞으면 등급이 올라가 성적 향상의 만회가 가능하였기에 학생의 부모님은 교육청에 정식으로 민원을 냈고 관내 다른 학교의 동 교과 선생님들과 전문가가 모여 문제를 협의한 결과 오류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랬음에도 학생의 부모님은 인정하지 않고 그 후 2개월 이상 그녀는 시달렸다. 학생은 사사건건 그녀의 수업에 토를 달았고 그때부터였을까. 그녀는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 앞에 서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달아오르는 현상이 생겼다. 다음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말이 누군가에게 꼬투리를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생겼다. 매사에 자신이 없고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기 일쑤였다.

3학년만큼 비정한 학년이 있을까. 모든 것이 점수로 결정되고 점수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기도 했다. 모의고사에 교사가 강조했던 문항이 출제되면 그 선생은 단번에 족집게 신이 되기도 한다. 그 교사가 하는 말을 아이들은 놓치지 않고 메모하고 듣는다. 그러나 문항 출제에 오류가 있고 그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해당 교사는 열외가 되기도 한다.

동 교과 선생님들이 도와주냐고? 아니다. 자기들한테 불똥이 튈까 봐 은근 몸을 사리기도 하고 누군가 온몸으로 민원 세례를 받고 있어도 ‘아이구 저런’ 하면 끝이다. 그만큼 외로운 곳이 학교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도와주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있어도 결국 자기 일이 아니면 슬며시 발을 빼내는 곳이 학교라고, 정말 비인간적인 곳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결국, 3학년에서 내려와 다음 해에 1학년을 맡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더 심해졌다.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그녀를 거부했고 같은 학교에 자매나 형제가 있는 아이들은 소문을 퍼 날랐다. 옆에서 보기에도 그녀의 처지가 딱했지만 달리 해 줄 게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악화하였고 교장은 그녀의 부모를 학교로 호출했다. 이제는 휴직이나 병가가 아니라 사직이었다. 더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는 교사를 교장은 더 두고 볼 수 없다고 직접 교육청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교장실에서 부모는 그녀의 사직을 막기 위해 교장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다는 카더라 통신이 난무했다. 냉정한 교장 앞에서 읍소나 감정에 호소하는 일은 먹히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그녀가 순순히 사직했고 곧 다른 교사가 발령을 받아 그녀의 자리를 채웠다. 학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러갔고 아이들도 더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임용고시를 보고 정당하게 교사가 된 그녀를 그리 쉽게 그만두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권 단체가 나서기도 하고 법에다 호소하면 그녀의 자리가 보전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5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개인의 문제를 법에다 호소하여 해결하기는 좀 어려운 시기였다고나 할까.

어쨌든 억울하게 그녀는 학교를 떠났다. 물론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었지만 조리돌림을 당하고 학교를 떠난 그녀가 가끔 생각났다. 그녀가 감내했을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마음이 무너졌을까. 가르치던 학생들의 냉대와 무시, 학부모의 손가락질에 이어 믿었던 동료들의 무관심과 무언의 압박.

철밥통이라는 공무원 자리를 떠나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그녀의 밥줄을 끊고도 아무렇지 않게 정년까지 마친 교장도 퇴임하고 그녀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도 이리저리 흩어져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 기억도 희미해진 옛일이지만 타의에 의해 떠밀리듯 학교를 떠난 그녀가 가끔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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