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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와디디 Nov 03. 2021

세 분의 스승

첼로 입문기 <이 나이에 굳이 첼로를 하겠다고>


1년 간 첼로를 배우면서 무려 세 분의 선생님을 모셨다. 마음에 안 든다고 3개월마다 갈아치우고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원래 한 번 선택을 하고 나면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처음의 결정을 믿고 쭉 간다. 바꿔댄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이의 학원도 보통 선택하면 큰일이 없는 한 바꾸지 않는다. 아이는 같은 영어 학원을 6년 다녔고, 태권도, 바이올린 모두 선생님 사정상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바꾼 적 없다. 그건 의리를 중시하는 나의 장점과 정보에 어둡고 리서치에 게으른 나의 단점이 결합된 결과일 거다. 학원 바꾸는 것도 솔직히 부지런해야 바꾼다.

그런 내가 1년 새 첼로 선생님을 세 분이나 모셨다니.

처음에는 제주로 내려와 지내게 되면서 한 번 학원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제주에서 가르쳐주시던 선생님께서 취업을 하시면서 평일 밤이나 주말에만 수업이 가능한 상황이 됐다. 주부로선 쉽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결국 숨은 고수를 찾아준다는 ‘숨고’라는 플랫폼에서 첼로 선생님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웬걸. 부산에 사시는 분이 줌으로 수업을 하자는 연락 하나. 그리고 제주시청 근처 연습실에서 수업이 가능하다고 하신 분 하나. 이렇게 두 분 밖에 연락이 없었다. 줌 수업이 가능했으면 분당에서 배우던 선생님께 배웠지. 분당 선생님 말씀으로는 인터넷 상으로는 싱크가 잘 안 맞고 오디오도 잘 들리지 않아서 섬세한 악기 수업은 쉽지 않다고 했다. 내가 숙련자라면 또 모를까. 이제 걸음마를 뗀 초보자로서는 안 될 일이었다. 결국 제주시에 계신 선생님께 배워보기로 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제주시까진 무려 40Km, 평화로를 평균 시속 80킬로미터로 밟아도 무려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게다가 변화무쌍한 제주 날씨 때문에 어떤 날은 문자 그대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갯속을 달려가기도 했고, 폭우를 뚫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먼 길을 달려 처음 도착한 연습실은 지금까지 다녀본 음악 학원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어? 뭐지?' 바닥에는 장판이 깔려 있었고 방석도 놓여 있었고, 장구, 꽹과리를 비롯해서 거문고, 가야금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어쩐지 방석을 당겨 앉고 사주라도 여쭤봐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알고 보니 전통 악기 연습실도 겸하고 있는 곳이었다. 나를 가르쳐주실 선생님이 같이 합주하는 팀이 연습실로 쓰는 곳이었는데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임대해서 쓰는 곳에서 각자 레슨도 하는 그런 시스템인 것 같았다. 작은 빌라의 지하실이었기 때문에 이중 주차를 할 수밖에 없어서 레슨을 받다가 뛰어나가 차를 빼주고 뛰어들어올 때도 있다. 한 번은 첼로를 켜는데 지축이 울리고 새시가 진동하는 소리가 자꾸 들려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내가 첼로를 켜다 집 무너뜨리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소리였다. 몇 번 그랬는데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밖에서 공사를 하나보다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어느 날 레슨을 받으러 갔더니 선생님이 탬버린 같이 생긴 악기를 들고 나오시며 말씀하셨다. “범인을 찾았어요!” 그 악기가 첼로의 진동에 함께 울리며 그런 소리를 냈던 것.     

 

여러 스승을 모시는 장점도 있다. 선생님들마다 특히 중시하는 부분, 그리고 교습 스타일이 달라서 나의 여러 면을  점검하고 갈고닦을  있다. 분당에서 처음 뵀던 선생님은 articulation , 소리를     제대로 똘똘하게 내는  중시하는 분이어서 대충 넘어가는  스타일을 가다듬는데 정말 도움이 됐다. 정말  마디  마디씩 꼼꼼하게 봐주셨다. 문화적으로 취향도 비슷해서 좋은 책도 많이 추천해주시고, 무엇보다 정말 친절하고 상냥하셔서 용기가 많이 생긴다. 그리고 여자인 내가 봐도  어여쁘셔서 첼로를 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하늘에서 첼로를 켜며 지상에 강림한 선녀가 따로 .... 여기까지만 하겠다.( 하면 스토커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을 ) 제주에서 처음 만난 선생님은 나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분당 선생님과는 달리 나를  물에 풀어놓고 스스로 터득해 나가도록 격려하는 편이셨다. 이런 교습 방식의 장점은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청출어람이 가능하다는 . 하나하나 일일이 가르쳐주는 경우엔 그것만 그대로 흡수하면 끝인데 이런 스타일은 학생 본인이 끊임없이 연구하며 무한대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물론 나는 그런 수준을 논할 경지가 아니어서 해당사항이 없다.) 가끔 ‘다시, 다시, 다시!’ 외치며 나를 무척 당황하게도 하셨지만  때리는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진도를 빨리 빼는 것보다 충분히 연습하고 앞으로도 돌아가서  복습하고 기반을 탄탄히 잡아야 나중에 편하다는 신조로 배우는 여유를 몸에 배게 해주셨다. 그래서 지금까지 조급해하지 않고 배워나갈  있게   같다. 문제는 성별이 다르고 나이도 있다 보니 몸을 쓰는 악기를 가르칠  필요한 자세 교정에 한계가 있다. 말로는 설명이 제대로 전달  되는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러면 손을 잡아서 모양을 잡아줘야 쉬운데 그게 여의치 않은 . 어쩔  없이 그런 과정이 필요할 때면 선생님께서는 “제가, 지금 , 선생님 손잡고 싶어서 이러는  아닙니다.”라는 말씀을 굳이 하셨다. 그런데 그다음에 만난 여자 선생님께서 왼손 모양을 잡아주시는데 손가락 , 손가락 사이의 거리, 관절 있는 부분, 손목 등등을  잡아주시느라 거의 손을 조물딱 조물딱 주무르는 수준으로 만지시는  보고, 예전 남자 선생님이 그걸 못한  나를 이해시키느라 얼마나 힘드셨을지 짐작이 갔다.  궁궐에서 어의가 중전마마의 손목을 잡지 못해 실로 묶어  실에서 맥을 짚을 때의 답답함이 그와 비슷하려나.  번째 만난 제주시의 여자 선생님은 첼로를 전공하시고 교육학 대학원을 다니시는 분이신데  분의 특징은 스케일(음계) 연습을 아주 중시한다는 . 50 수업 동안 무려 20분이나 스케일에 투자한다. 그러다 보니 고질적으로 고쳐지지 않던  쓰는 법이나 왼손 운지법이 정말 개선됐다. 단순 노동처럼 느껴지는 스케일은 지겨워서 연습할 때도 어찌 보면 그냥 해치우는 느낌으로 했는데 레슨 시간을 할애해서 하다 보니 열심히 하게 된다. 진도를 빨리빨리 나가야 배우는 학생들도 배울 맛이 나고 진도 빼는 재미도 있는데 이렇게 하시는  보통 뚝심으론  되는 일이지 싶다. 그리고 어찌나 씩씩하고 화통하신지 내가 웃기는 소리를 하면 ‘음핫핫핫핫핫핫하고 크게 웃으신다. 그러면 질세라 나도 따라 웃고 그러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전통 악기들이 우르르 울리며 같이  바탕 웃는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스승을 모시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만나 뵌 선생님들을 떠올리면 내가 스승 복은 있는 것 같다. 모두 좋으신 분들이다. 어릴 땐 뭘 배워도 정말 영혼 없이 저 사람은 저게 할 일이니까 생각하고 지겨워만 했는데, 이만큼 나이를 먹고 무얼 배워보니 마음이 다르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르친다는 일이란,  자기 자신이 오랜 시간 어렵게 익혀 오고 터득한 것들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일이다. 비록 돈을 받고 하는 일일지라도 자기 안의 것을 거듭 퍼내어 남에게 심어주는 일의 숭고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어릴 때, 젊을 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되어 있으려나. 어쩌면 동네에 큰 인물 하나 났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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