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의 훈장, 개구리 왕눈이 손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

by 고고와디디

손도 늙는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 노화를 처음 겪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온몸에서 거르는 구석 하나 없이 닥치는 변화가 당혹스럽다. 흰머리나 얼굴의 주름은 인생 선배들을 보며 어느 정도 예견했던 부분이지만 다른 신체 부위는 잘 보이지도 않고, 남의 몸을 굳이 자세히 들여다볼 일도 없으니 노화가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진행되는지 속속들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는 것 중에 신기하다고 느낀 것들 중에 하나는 얼굴이나 피부에 자국이 나면 없어지는데 한참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낮잠을 자다가 바로 깨서 밖에 나가게 되면 내내 얼굴에 베개 자국이 난 채로 사람들도 만나고 볼일도 봐야 한다.

기미(아직은 검버섯은 아닐 거라 믿고 싶다)나 원래 없던 점들은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에 생긴다. 이것도 직접 겪기 전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 온몸이 약간 지저분해지는 느낌이랄까? 내 친구는 무릎의 살도 처지기 시작해서 반바지를 입기 싫어진다고.

그리고 어느 날 알게 됐다. 나의 손도 늙어 있음을.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반지를 하나 하고 싶어 백화점에 가서 몇 개 끼어봤는데 환한 조명 아래에서 보니, 반지는 안 보이고 어느새 늙어버린 나의 손만 보였다. 아직 ‘쪼글쪼글’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주름도 많아지고 핏줄도 두드러지고,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뭔가 좀 ‘쭈글’해진 느낌? 그런 손에 반짝거리는 반지를 끼우니 늙은 손이 더 두드러져 보였다. ‘아, 반지도 젊을 때, 손가락이 예쁠 때 꼈어야 하는 거구나. 이제 예쁜 반지도 못 낄 나이가 되어버렸구나.’ 보석이 박힌 반지나 제법 값나가는 반지를 사서 낄 수 있는 경제력이나 마음의 여유를 갖춘 나이가 되었더니 손이 그런 아름다운 것들과 따로 놀게 되어버렸다.


내 손은 원래부터도 예쁘지 않았다. 피부가 하얀 편이 아니니 손의 피부색도 가무잡잡한 데다 손가락은 앙상할 정도로 가는 편인데 마디는 엄청 굵어서 꼭 나무의 옹이처럼 두드러져 보인다. 그런데 노화가 진행되면서 퍼런 핏줄도 더 튀어나오고, 어느 날 생긴 작은 뾰루지 같은 것들은 없어지지도 않고 아예 영구히 자리를 잡아버렸다. 나는 좀 극단적인 만화 같은 상상을 잘하는 편인데, 손이 늙어버렸다는 걸 깨달은 순간, 백설 공주의 보드랍고 새하얀 얼굴 앞으로 빨간 사과를 내밀던 노파의 쪼글쪼글하고 그로테스크한 손이 떠올랐다.

망했군.


그런데 늙어가는 손 때문에 속상해하던 내가 요즘은 손이 점점 더 못 생겨지길 바라게 됐다. 첼로 덕분이다. 첼로를 하는 사람들은 왼손으로 현을 꾹꾹 눌러 음정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손톱이 길면 안 된다. 손톱이 길어지면 지판과 손가락 끝 사이에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홍색 손톱 위로 하얗게 자라는 부분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싹 깎아줘야 한다. 그러니 깎으면 깎을수록 손톱은 뭉툭해지고 더 짧아진다. 그리고 왼손가락 끝부분으로 줄을 계속 힘주어 누르다 보니 손가락 끝에 하얗게 굳은살이 박인다. 뭉툭한 손가락 위로 계속해서 굳은살이 박이다 보면 손가락 끝 윗부분만 둥글넓적하게 면적이 늘어난다.

하루는 레슨을 받으러 가서 가뜩이나 못생긴 손이 첼로 하면서 더 못생겨진다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맞아요. 첼리스트는 개구리 왕눈이 손이 돼요. 근데 그게 자랑스러운 훈장이잖아요!”

아, 그런 거였어?


언젠가 강수진 발레리나의 발을 찍은 사진을 봤을 때 굳은살이 박이고 여기저기 울퉁불퉁 튀어나온 그 발이 추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발이 저렇게 될 때까지 얼마나 끝없이 연습했을까 싶어 존경스러웠고, 그런 발이 숭고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고 보면 몸은 참 정직한 것 같다. 자기가 살아온 세월만큼 표시가 나니까.

곱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히 놀았던 손발은 매끈매끈 계속 아기 피부처럼 고울 것이고, 수십 년 물일을 하거나 시장에서 생선 토막을 치거나 발끝으로 서서 발레를 연마한 손이나 발은 그 노동과 노력의 시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

어찌 보면 참 간단한 이치다.


어차피 예쁜 손을 갖기는 틀렸고, 그 흔한 네일케어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채로 손이 늙어버리기고 있지만 괜찮다. 그냥 예쁜 손보다는 나도 내가 한 노력의 흔적을 남기는 손, 살아온 세월을 담은 손을 가질 수 있게 됐음이 기쁘다.

오히려 왼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더 단단해지고 손끝이 더 뭉툭하고 커져서 완벽한 개구리 손이 되길, 누가 봐도 오랜 세월 첼로를 연마한 손이 되길 기대해 보게 됐다.

지금도 키보드를 치다가 오른손으로 왼손의 굳은살을 문질문질 문질러본다.

첼로 실력은 너무 더디 늘어 참 답답한데, 왼손 끝을 만져 보면 굳은살이 단단한 게 그래도 내게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은 증거인 것 같아 뿌듯하다.

사람들이 ‘어? 근데 왼손이 왜 그래요?’하고 물어봐주면 좋겠다.

그러면 ‘아, 제가 첼로를 해서요... 이게 첼리스트 손이거든요.’라고 대답해야지.


당신의 손은,

무엇을 한 사람의 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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