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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여행자 꼬꼬
Oct 27. 2024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우리가 멀어지는 거야.
나 말고 누가 보기 좋으라고 이렇게 사는 걸까?
중학생 때까지였을까?
명절 마다 큰집에 가는 게 즐거웠던 때는.
팔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아버지를 둔 덕에, 세뱃돈을 받을 수 있는 설날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가장 기다려지던 연중 이벤트였다.
비록 세뱃돈을 받진 못했지만, 큰집에 가면 반가운 사촌들도 보고,
큰아버지 큰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는 것도 즐거워 세뱃돈 못 받는 추석에도 기쁘게 큰집을 가곤 했다.
고등학교 때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큰아버지, 큰어머니를 뵙는 게 기쁘지만은 않았다.
공부로 오랜 시간 앉아있느라 살이 찌기도 했고, 학교 성적과 대입 준비로 예민한 나였을 테다.
우리 사촌들 중에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명문대를 졸업한 언니 오빠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소위 스카이 대학교는 따 놓은 당상이라 생각했던 걸까? 언니 오빠들 앞에서 초딩 꼬꼬는 한국에서 최고가 아닌 세계에서 최고인 하버드에 가겠다고 다짐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1, 2학년을 지내면서, 실은 내 자신이 공부에 그리 소질이 없다는 걸 알아갔다.
큰집에 가면 어른들이 나의 성적을 물어볼 것만 같았고,
외모 평가에 스스럼없는 어르신들은 실제로 불어난 나에게 살이 쪘다며 아무렇지 않게 한 마디씩 얹곤 했다.
어른들은 사실 나에게 그리 큰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고, 안부로 딱히 다른 할 말이 없어 내뱉은 말들이었을 테다. 하지만 대인관계에 면역이 없고 감수성 예민했을 나에게 큰집 방문은 마치, 약 반년의 시간차를 두고 그간의 생활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시험장과도 같았다.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한국인들이 주위의 엄친아, 엄친딸, 동년배, 동기, 심지어 형제나 자매를 두고도
자의로, 혹은 타의에 의해 수많은 비교를 당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몇 년 전 가족들과 홍콩 여행을 했을 때였다.
홍콩은 영어가 통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간판들은 한자로 되어있었고, 현지 사람들은 광둥어로 소통했을 테다. 관광으로 간 여행이 으레 그렇듯, 현지의 사람들과 소통을 할 경우라곤 물건을 살 때와,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할 때, 택시를 탈 때 정도였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홍콩의 사람들과는 어떠한 인간적인 대화를 해볼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여행을 다녀와 찍었던 사진을 보던 중,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찍은 사진은, 번화가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바글바글 떼로 뭉쳐서 녹색불 신호를 기다리는 현지 사람들의 사진이었는데, 나는 이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도, 가진 재산이나 받는 연봉도, 그 어떠한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 바글바글 떼로 뭉쳐서 서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어떤 사람인지 - 사회적 명망이 높은지 낮은지, 연봉이 몇억인지 몇천인지, 친구가 많은지 적은지, 외모가 수려한지 아닌지 -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으니 판단할 수도 없고, 그 사람들은 나에게 있어 그저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 이웃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 사람들과 마주 보고 인사를 하게 된다면, 그들도 나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나 또한 그들로부터 판단 받고 평가받지 않을 수 있어 자유로운 기분이 들 테다. 그렇다면, 나와 친분을 나누고 피를 나눈 친척들보다 이렇게 상관도 없는 타국 사람들이 더 편한 사람들처럼 느껴진다는 건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국토의 절대적인 면적이 좁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서울공화국'이라 대한민국의 12% 면적 수도권에서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살아가고 있으니, 두어 다리만 건너면 이 나라에서 꽤 '잘나가는' 사람들이 나의 비교 군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사실 각자의 갈 길을 가야 할 테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는 순간, 내가 할 후회는 아마도 'OOO보다 더 높은 위치에 갈 걸', 'XXX보다 더 돈을
잘 벌 걸' 이 아닌, '내가 정말로 하고 싶던 ㅇㅇ일을 더 열심히 할 걸', '가족, 친구들과 더 잘 지낼걸'이라는 후회에 가까울 것 같다.
엄친딸이 의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나도 의대에 진학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촌이 로스쿨을 준비한다고 해서 나도 법조계에 진출해야 하는 건 아니다.
친구가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내가 학사학위에서 멈추지 못할 이유는 없다.
동생이 억대 연봉이라고 해서 나도 갑자기 억대 연봉을 받는 직장을 구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스스로를 비교할 필요가 없는 대상과 비교하며 자책을 하기도 하고,
잘나 보이는 사람들 옆에선 주눅이 들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글을 보는 독자분들께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우리 이렇게 좁은 나라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지혜롭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비교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그냥 서로를 응원하면 어떨까요?
스스로도 자책하거나 조급해하지도 말고요.
홍콩의 웡아무개씨보다는 가까이 사는 당신과 더 편안한 사이로 남고 싶어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