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육을 말할 때, 양육을 말할 때 “장점에 집중하라”는 말을 너무 쉽게 꺼낸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점점 이런 생각이 든다.
단점을 너무 빨리 지워버리려 하는 건 아닐까.
어떤 단점들은 시간이 지나며 의외의 강점으로 바뀐다.
소심함이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되고, 불안이 위험을 먼저 감지하는 감각이 되듯.
또 어떤 강점들은 사실 단점을 메우려다 생긴 부산물이다.
기억력이 약해서 기록을 남기고, 사교성이 부족해서 깊은 관계를 만든다. 이 경우 단점이 사라지면 그 사람을 지탱하던 구조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서 단점은 단순히 “고쳐야 할 결함”이라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게 될지를 결정하는 조건에 가깝다.
영화 킹스 스피치를 떠올려본다.
말더듬이 있는 왕, 조지 6세. 연설자로만 보면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의 말더듬은 국민들에게
깊은 진실성을 남긴다. 그가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연설을 “잘한 연설”로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느낀다.
저 말은 쉬운 말이 아니었겠구나. 피할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말했구나. 말더듬은 강점이 되지 않았다. 끝까지 단점으로 남아 있었다. 다만 그 단점이 그의 말에 개인적인 대가와 책임을 부여했다. 그 순간, 왕의 말은 수사가 아니라 선언이 된다.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도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언어로 한다. 조용함, 머뭇거림, 말이 적음. 보통은 리더십의 결함으로 여겨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녀는 묻는다.
정말 그럴까.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의 말은 정보가 된다.
하지만 말을 하기 어려운 사람의 말은 종종 신뢰가 된다.
침묵이 많다는 건 아무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말을 꺼내기까지 더 많은 검열을 거쳤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래서 내향적인 리더의 말은 빈도는 적지만, 무게는 크다.
이 지점에서 ‘단점과 강점’이라는 이분법은 의미를 잃는다.
중요한 건 이 단점이 어떤 환경에서 독이 되는지, 어떤 역할 안에서 연료가 되는지다. 말더듬은 연설가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전시 상황의 국왕에게는 신뢰의 증거가 됐고,
내향성은 세일즈 현장에선 불리하지만 불확실한 시대의 의사결정자에게는 안정의 신호가 된다.
그래서 점점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단점은 제거할 대상이 아니라, 다르게 배치해야 할 조건이라고. 아마 양육도, 교육도 “이 아이의 단점을 어떻게 고칠까”보다
“이 단점을 전제로 어떤 삶의 구조를 만들어줄까”라는 질문에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완벽하게 말하는 왕보다
말더듬는 왕의 연설이
오래 남았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