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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May 13. 2023

위어드 5장 내용정리와 기독교에 대한 생각

기독교의 의외의  역할


호주에 있을 때 한국에서 이민 온 교수님으로부터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교수님은 결혼 주례로도 돈을 벌고 있었는데, 호주는 주례도 라이센스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왜 필요한가 그 분도 처음에 신기해서 공부를 해봤는데 알고 보니 주례는 원래 검사의 소관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검사들이 주례를 담당했을까? 이유인 즉, 검사들이 결혼 전에 두 가지를 조사해야 했다. 하나는 결혼하는 사람들의 신원이 확실한지, 또 하나는 둘이 근친상간이 아닌지였다.. 근친상간? 사실 옛날 호주에는 근친상간이 흔했다고 한다. 남자 입장에서 외딴 섬에서 여자를 구하기 힘들기도 했고, 호주는 초기에 영국 범죄자들을 이주시킨 곳이다 보니 서로 믿질 못해서 차라리 친인척 내 결혼을 선호했다고 한다. 이 시기 영국 내에서는 근친상간이 근절된 지 한참 됐는데 호주에서 이 문제가 발생하자 검사가 주례를 이유삼아 개입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검사가 하지 않지만 대신 라이센스 형태로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주례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주례자도 신랑, 신부의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거의 5년 전에 들었던 얘기이지만 흥미로워서 아직도 기억하는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근친상간은 먼 얘기가 아니었고, 초기 호주 역사의 한 부분을 다른 시각으로 그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인지 위어드(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라는 책을 폈을 때 다시 이 이야기가 나에게 다가왔다. 여기 쓸 이야기는 5장까지 한정으로 정리 및 생각나는 이야기이다.


세계에서 소수에 속하는, 그렇지만 부유한 서유럽을 만든 한 축은 기독교(로마 카톨릭)의 공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독교가 오늘날의 The WEIRD(서구의 부유하고 교육받은 민주주의 및 산업화 시대를 누리는 계층을 약자로 WEIRD라고 한다)를 형성할 수 있게 역사적으로 저질렀던 짓이 근친상간 금지, 일부다처제 금지였다. 이걸 왜 '짓'이라고 부르냐면 중세 당시,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근친상간은 부족이나 가문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기 구성원 내에서만 결혼을 해야 조상들이 대대로 물려준 영토와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일부다처제는 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 다른 부인을 통해서라도 아들을 낳고 대를 잇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었다. 남편이 아들도 없이 죽었을 경우 부인은 다른 형제와 결혼을 해서라도(수혼제도) 아들을 낳을 수 있어야 했고, 이는 미망인과 그 재산의 이탈을 막을 수 있었다. 이걸 읽기 전까진 근친상간과 일부다처제가 단순 남자들의 지난 친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이유도 없진 않겠지만) 이들은 좀 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압력이 있었기 때문에 유지된 제도였다.


기독교(로마카톨릭)가 이를 금지한 점은 다른 종교와 비교해 볼 때 뜻밖의 결단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기독교 계통(조로아스터교, 네스토리우스교, 동방정교 등)은 근친상간과 일부다처제에 그렇게 단호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둘을 금지할 근거가 성경에는 빈약했다. 그리고 로마카톨릭이 오늘날 성공하고 부유한 서유럽을 만들 의도는 당시에 더더욱 없었다. 아마 근친상간을 하면 자손들이 각종 질병에 취약하리라는 사례를 보았고, 다른 종교와의 경쟁 속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구축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선택적으로 금지하지 않았나 본다. (저자도 그 이유는 복잡하다고 한다.)


금지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미망인들은 떠났고, 아들 없이 무너진 부족과 가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매가 중요한 근친혼에서 가장의 역할이 큰데 이 부분도 약해졌다. 귀족들은 면죄부를 사서라도 근친혼을 계속하려고 했다. 만약 교회의 경고를 계속 무시하게 되면 파문을 당하게 되었고, 더럽혀진 영혼을 가진 자는 아무와도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돈 없는 자들은 면죄부나 기부를 할 돈이 없어 교회의 권고대로 가게 되었다. 근친혼이 점점 사라지자 친인척 간의 결속력도 약해졌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쉽게 했다. 이는 후에 길드 같은 각종 조합 형성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중세 당시 가장 큰 수혜자는 교회였다. 갈 곳 없는 재산과 땅은 교회에 귀속되었다. 이러한 사회/문화가 지속되자 교회는 급격하게 성장하게 되었고 동시에 교회 내부에 다시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고 한다. (이후는 6장 내용이라 다음에 쓸게요)


중세와 로마 카톨릭이라는 키워드를 들었을 땐 보통 암흑기, 사회 발전 정체기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교회는 과학과 이성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라는 편견이 있기도 하고, 실제 중세 1000년 동안 유럽에 뚜렷한 발전 과정을 배우거나 듣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중세는 가시적인 큰 변화는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변태 혹은 변화를 겪는 시기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돈을 좋아하지만.. 자본주의/상업 발달에는 거리가 멀 듯 한 기독교가 사실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윤리'는 너무 억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책은 정교한 논리 구축에 감탄하면 밑줄들을 여러 번 그었었다. (단 5장 뿐인데). 그러고 보니 자본주의식 가치관 발달과 기독교의 밀접한 관련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도 한 번 더 언급된 적이 있다. 책은 미국의 기독교가 능력과 노력을 통해서 얻은 보상은 신의 은총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한다. 따라서 meritocracy로 얻은 보상은 공정한 결과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게 되었다. 그게 공정하냐를 논의하기에는 이 글에서 벗어난 주제이니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 하지만 두 책을 봤을 때 기독교는 중세에도 20세기에도 발전, 돈과 관련된 의식에 깊게 관여하는 듯하다. 비교적 최근 영향은 아쉽지만 말이다.


총 14장 중에 5장까지만 읽었을 뿐인데 풍요로운 지적 탐험을 한 기분이다. 나머지 장도 기대가 많이 되는데 또 생각나는 부분이 있으면 남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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