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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Jul 28. 2023

슈퍼피셜 코리아와 헬조선이라는 게임

이미 밸런스 패치가 끝난 한국

나는 평소 사람 만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내 대인관계가 좋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 서면 인상을 찌푸리는 그런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런 건 아니다. 회식을 하거나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그런 자리가 오면 누구보다도 잘 웃고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다. MBTI상 I라 이런 시간을 가지면 기가 빨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긴 해야 하지만 인간관계 자체를 극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서로에 대해 더 깊게 친분을 가지고 점점 만나는 횟수를 늘리는 것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편이다. 왜 그런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표현하진 않았는데 이번에 읽은 슈퍼피셜 코리아에서 그 점을 짚어주어 속이 시원했다.


미국 사회에서는 '네트워킹'이라는 개념이 인간관계의 폭을 넓혀가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한국사회에서는 상대방과의 공통분모를 찾아 인간관계를 더욱 좁혀가고 굳건히 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슈퍼피셜 코리아는 유학생에서 시작하여 스탠포드 교수까지 올라간 사회학자(신기욱)의 글이다. 슈퍼피셜 코리아에서 슈퍼피셜(피상적인)은 한국에서의 인간관계가 이해관계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는 인위적이고 가식적임을 표현한 단어이다. 교수가 말하길 미국에서의 네트워크는 인간관계를 넓힘을 의미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서로 간에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있는지 찾고, 거기서 상대적인 위치(나이, 직업, 학벌, 겅제력)를 찾는 데 있다고 한다. 인간관계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더 좁히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이 나와 학벌이 비슷한지, 돈을 나보다 잘 버는지, 내가 연장자인지 그런 우열들을 따지다 보니 자연스레 인간관계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평소 내 답답함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전화 온 친구가 내 현재 직장이 어딘지 물었을 때 그게 왜 궁금한지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특정 주제를 가지고 만난 모임에서 내 나이를 왜 묻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게 정말 중요한가?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 기대한 건 새로움이었는데 사람들은 내게 자신이 익숙한 것에 대해 묻거나 듣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런 걸 알고 싶은 심리가 부분적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첫 번째 이유로는 한국이 장기간동안 안정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 위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를 보면 어느 정도 열심히 공부를 했는지, 직장을 보면 얼마나 돈을 버는지 예측이 쉽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걸 토대로 이 사람은 이 정도의 능력+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 판단해 버리곤 한다. 두 번째로는 이러한 질서가 다 정보화 됐기 때문이다. 호갱노노를 보면 만나는 사람의 집이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다. 직장은 링크드인으로 조회가 가능하다. 외모는 인스타그램이나 카톡 프로필로 볼 수 있고, 만남 어플에서는 자신의 재직증명서나 회사 이메일 주소를 제출해야 한다. 연차에 따른 공무원 월급표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숨길 수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밸런스 패치가 다 끝났고 공개됐기 때문에 헬조선의 게임 플레이어들은 서로 간의 레벨차나 상성을 파악하기가 너무나 쉽다. 그래서 비슷하거나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고, 자기보다 떨어지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생기는 듯하다. 인간관계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는 확신이 없다. 이런 게 정말 한국 사회에 좋을까? 개인에게도 좋을까? 책 제목대로 서로 간의 피상적인 면만 보려 한다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미 많이 놓쳤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난 한국에서 인간관계를 만들기가 참 어렵다고 느껴진다. 피상적인 인간관계라면 차라리 안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대규모 이민자들이나 사회적 붕괴가 일어나 이런 밸런스를 좀 흔들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상상도 해봤다. 물론 무리라는 점을 잘 안다.


한국은 흔히들 다이내믹하다고 하지만 그 다이내믹함을 들여다보면 점점 굳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이 있어 우리를 갉아먹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저자도 그 점을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 특히 대학교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이건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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