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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Oct 01. 2023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리뷰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1부에 대한 반성문

독자들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만들려면 등장인물의 겉모습보다 장소와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배경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 '언제나' 스토리니까.


좋은 소설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독자에게 어떤 내용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직접 보여주라는 것이다.


과거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땐 스티븐 킹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는 50페이지를 채 읽다가 놓아버렸다. 소설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왓챠피디아 리뷰에 1점 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업무용 글이나 비판적 에세이를 잘 쓰고 싶은 내게는 필요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소설을 쓰는 시점에서 그의 책은 너무나 달콤했다. (리뷰도 4점으로 수정했다.) 대학교 명강으로 소문난 교수의 수업을 듣는 듯했다. 그냥 재밌는 썰을 풀길래 듣다 보면 어느새 무언가 교훈 하나를 건진 느낌이다. 여기에는 건져진 많은 교훈 중에 특별히 소금까지 쳐서 보관하고픈 부분을 적어본다.


작가는 게을러서는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은 잠깐 쓰다가 오랫동안 쉬고 다시 쓰는 게으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주고 책을 산 독자들을 이야기로 푹 빠지게 유도해야 하는데 쉽게 쓰고 싶은 유혹 때문에 무미건조한 설명문 식으로 쓰는 게으름을 말한다. 독자는 에어컨 사용설명서 같은 소설을 읽고 싶지 않다. 스토리를 원하고 거기에 빠져들고 싶다. 주인공과 공감하고 싶다. 이러한 독자들을 무시한 채 제 딴에는 속도감(그리고 빨리 이 부분을 넘기고 싶다는 욕구)을 주겠다고 죽은 묘사로 뒤덮인 글로 쓴다면 작가로서 직무유기이다. 설명문이라니까 그냥 긴 문장 나열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대화로 때우는 방식도 역시 게으름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게으름을 극복할까? 어떻게 설명문이 아닌 스토리로 바꿀까? 몇 가지 고민해 본 방향은 있다.


1. 설명문 같은 글은 대화로 바꿔본다.

2. 대화는 역으로 묘사로 바꿔본다.

3. 액자식 구성을 넣는 것처럼 전개 방식을 바꿔본다.

4. 꼭 필요한 묘사인가 고민해 보고 필요 없으면 아예 삭제해 본다.


이걸 토대로 내 소설을 비판해 본다면,

- 6화 딸의 인스타그램 이야기는 설명 방식으로 된 전개가 너무 많다. 혼자만의 이야기라 대화를 넣는 방식은 힘들지만, 묘사를 좀 더 생생하게 만들거나 전개방법을 다르게 해야 할지 고민된다.

- 4화, 5화는 꼭 필요한 전개인가 의문이 든다. 쓸 때는 독자에게 배경설명이 필요하겠다는 의도에서 지었지만, 이걸 과연 독자들이 수긍하고 재밌게 읽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 소설의 중심은 남한 사회와 접하는 리 대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다 삭제할 생각이다. (분량이 사라지는 아픔은 어쩔 수 없다.ㅜ)

- 당과 노조의 자강두천 편은 마음에 든다. 리 대리와 주 과장의 대화로 쭉 전개도 가능 하지만, 액자식 구성을 넣은 게 더 재밌는 방식이라 생각이 든다.

- 첫 화, 리 대리의 출근은 너무 따분하다. 배경 설명이 꼭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따분함 감출 수가 없다.

- 이대남vs이대녀 부분비겁하기까지 하다. 남녀 갈등은 대한민국을 한번 휩쓸고 지나간 큰  이슈인데, 이렇게 경박단소하게 마무리 지어도 되나 고민이 된다. 리 대리와 송 대리가 북한 사람이라 실감 나게 쓰기가 어려운 점은 있다. 그리고 민감한 주제라 조바심이 든 것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100만 작가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눈치 볼 필요가 있나 생각 든다. 작가는 솔직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도 괜찮은 전개방식을 계속 고 있다.

여기까지가 리 대리 1부를 제출 직전까지 건드리지 못한 지점이다. 나중에 책으로 만든다면 100퍼센트는 아니어도 다시 손볼 생각이다.


스티븐 킹이 대작가인 건 알았지만 그의 소설은 아직 한 편도 읽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왠지 인기가 없었고 나 역시 그 영향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이 책 한 권으로 이 정도까지 영감과 반성을 줬다는 점에서 그의 필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제 한번 그의 책 한 권 정도는 휴가 때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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