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에이징 2편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20-
"정년퇴직 연령이 남한에는 없는 건가요?" 리 대리는 궁금해졌다. 남한 쪽 사정을 묻는 건 조심스럽지만 말이다.
"허허. 60세가 정년퇴직이긴 한데요. 하지만 할 수 없다는 게 맞겠군." 노 전무가 대답했다.
"거기도 당의 명령 같은 게... 있는 건가요?" 리 대리는 애써 추측해 보았다. 잘 사는 남한에서 오랫동안 일해야 하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당은 무슨 당. 폐지 줍지 않으면 다행인 게지." 노 전무가 말했다.
"정년퇴직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 일하는 것도 그렇고, 폐지를 줍는다는 건 무슨 말이죠? 남한에서는 노인판 고난의 행군을 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리 대리는 더 궁금해졌다.
"그게 말이요." 노 전무는 뜸을 들였다. 북한 사람과 업무 외 다른 얘기하는 건 민감한 사항이다. 하지만 리 대리와는 안면을 턴 지도 오래여서 괜찮을 듯했다. 커피는 아직 따뜻했고, 밖은 공사장 소리로 시끄러웠다.
"리 대리님이 생각하는 거만큼 남한 사회가 꼭 대단한 건 아니오. 뭐 다른 나라라 별 수 있겠소? 발전 많이 하고 예전보다 살기 좋아진 건 맞지만 노인네들이 다 그 열매를 골고루 나눠 가진 건 아니거든. 우리 세대 때는 자식한테 돈 다 뿌리면 남는 게 없는데, 국가란 놈은 우릴 위해 준비해 둔 게 별로 없어. 그 쬐깐한 연금 가지고 죽을 때까지 버티라는 거지. 자식 키울 동안 도와준 거 하나 없으면서, 노후도 우리가 알아서 준비하라니 별 턱이 있나." 노 전무는 다시 뜸을 들였다. 어디까지 말해줘도 되나 계산해야 했는데 이미 다 말한 거나 다름없지 않나. 이 놈의 입방정이라곤. 리 대리는 귀를 쫑긋 세웠다. 북한 매체에서는 남한 사회에 대한 독설과 비판은 항상 있는데, 노인 빈곤 문제도 그중 한 꼭지였다. 전체 노인 중 50퍼센트가 빈곤하단다. 하지만 거짓 정보가 워낙 많은 선전용 매체라 그다지 믿지 않았는데 노인 문제는 실제 있는 게 맞았다.
"그래서 노인들이 생존을 위해서 계속 일을 하려는 건가요?" 리 대리는 물었다.
"그런 셈이지. 고 반장은 운이 좋은 거요. 실력과 경험을 가져서 안 자르고 계속 일하게 냅두는 거니까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내보내고도 남을 나이오. 고 반장처럼 회사에 다니지 못한다? 그때부턴 자녀들한테 눈칫밥 먹으며 같이 지내거나, 길거리 폐지 주우면서 하루하루 연명하며 사는 거요. 이 놈의.." 노 전무는 욕까지 나오려다 앞에 리 대리가 있다는 걸 생각하고 말을 멈췄다. 자신은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얼마나 남길 수 있나 생각도 났다. 리 대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북한에서도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많았다. 아주 많았다. 그러나 남한의 노인 빈곤 문제는 그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게 남한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점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노인들이 계속 일해야 한다니 남한의 복잡함 중 하나군." 리 대리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나저나 리 대리님. 혹시 가족 중에 일 안 하고 노는 형제나 지인은 없을까요?" 노 전무는 이번엔 자기 차례였다.
"음... 다들 일하고 있어요. 근데 그건 왜요?" 리 대리가 대답했다.
"그게 말이죠..." 노 전무가 오늘따라 뜸을 많이 들인다. 둘 만의 긴밀히 할 소통이 많이 오고 가서일까. "쓸 만한 젊은 사람 있으면 남한으로 어찌어찌 데려가서 일 좀 시킬 수 있을까 해서요. 이게 탈북까진 아니고 뭐시기 라고 할까. 잠깐만 건너와서 일하고 싶은 젊은이가 있으면 소개 좀 가능할까요?"
"동무!" 리 대리는 소스라쳐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