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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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로봇과 결합된 미래 사회를 상상한 적이 있다. 그 글 말미에서 인간의 자아를 로봇에 이식해 생명을 연장하는 이야기로 마무리했는데, 여기에 대해 조금 더 파고들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 정리해본다.
먼저 부의 문제다. 지금은 한 부자가 죽으면 그 재산이 자녀에게 나눠지거나 사회에 환원된다. 죽음이 자연스러운 부의 재분배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로봇을 통해 생명이 연장되면, 이 균형이 무너진다. 죽지 않으니 부도 그대로 유지된다. 그 사람이 싫든 좋든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재산을 행사하고, 권력을 유지한다. 자연스럽게 빈부격차는 고착된다. 인간이 ‘유한성’을 전제로 설계한 경제 시스템이 근본부터 흔들릴 수도 있다.
두 번째는 호르몬 문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다. 예를 들어 남성은 사춘기 이후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면서 골격이 커지고, 키가 크고, 성격이 호전적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자아’를 복제해 로봇에 이식하면? 그건 단순히 육체만 기계가 되는 게 아니라, 아직 정서적으로 미완인 성향까지도 고정된 채 계속 유지된다는 뜻이다. 사회는 젊은 세대에게 신체적 능력만이 아니라 인격적 성숙도 기대한다. 그런데 성숙이란 건 경험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호르몬의 변화, 감정의 유연화 같은 생물학적 변화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로봇은 그걸 겪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감정적 미성숙이 ‘고정된 상태’로 영구 지속되는 사회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거다.
세 번째는 사회의 정체 문제다. 어쩌면 젊은 사람이 로봇으로 변하는 게 그나마 괜찮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나이 든 사람들이 대거 로봇화를 선택했을 때다. 그들은 자산이 많고, 경력도 있고, 지위도 있고, 이제 육체적 한계도 사라졌기 때문에 훨씬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저항도 세다. 그렇게 되면 사회는 유연성을 잃고 정체된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문화와 제도는 굳는다. 디지털 봉건제 같은 느낌이랄까.
네 번째, 이 상황에서 젊은 로봇 세대는 자연스럽게 반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생각도 빠르고 호전적인 젊은 층은 변화를 원할 텐데, 로봇화된 기존 세대는 그걸 가로막는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평범한 인간들 — 돈도 없고 로봇화도 못한 유기체 인간들은 어디로 갈까? 사실상 사회의 그림자 계급이 되는 거다.
마지막으로 가장 슬픈 경우. 어린아이가 사고나 병으로 죽었을 때, 부모는 그 아이를 로봇으로 복원하고 싶어질 수 있다. 영원히 곁에 두고 싶은 마음, 당연하다. 하지만 이 로봇 아이는 영원히 ‘아동의 모습’을 유지하게 된다. 자라는 것도, 성숙하는 것도 없이. 이건 일종의 인권 문제다. 감정과 자아가 있다면, 영원히 아이로 존재해야 한다는 건 저주다. 나는 이 장면에서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뱀파이어가 되어 영원히 자라지 못한 그 존재. 그 아이가 겪는 고통이 이런 것과 맞닿아 있다.
이런 주제에 흥미가 있다면 넷플릭스 〈블랙 미러〉 시즌 2의 ‘돌아올게’(Be Right Back)를 추천한다. 감정과 기억이 이식된 로봇을 마주한 인간의 혼란이 아주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가까운 미래의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단지 상상으로 치부하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