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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씨 Apr 04. 2023

엄마 오늘 나랑 마카롱 데이트 할까요?

귀염둥이 신사에게 데이트 신청받은 날

여느 때와 같이 정신없이 바빴던 어느 날 아침, 귀염둥이 우리 둘째는 등원 준비를 하다 말고 작은방으로 날 살며시 불러낸다. 혹시나 형아와 동생이 따라올까 방문을 살짝 닫더니 귓속말로 속닥속닥 말한다.

- 엄마 오늘 아침에 나랑 마카롱 데이트 할까요?

살금살금 속삭이는 둘째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출근 전 오전에 꼭 해야지 맘먹었던 거실청소며 설거지며를 다 내던지고 근처 카페에 나란히 앉았다.

익숙하게 창가에 자리 잡고 따뜻한 코코아 한 잔과 예쁜 색깔의 마카롱을 하나 골라 야곰야곰 맛있게 먹으며

- 엄마 난 엄마랑 데이트하는 게 너무너무 좋아요

하며 함박웃음 짓는 내 사랑둥이.


사실 너무 사랑스러운 우리 둘째지만 이 아이의 타고난 서러움과 특유의 섬세함이 그저 명랑하고 드센 엄마는 참 어려웠다. 도대체 왜 우는지, 왜 삐져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지 알 수가 없었고 도무지 어떤 게 힘들어서 주저앉아 투정을 부리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그런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둘째가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선생님께 상담을 받았다.

- 엄마가 체력이 된다면 잠시라도 둘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어때요?


첫째는 목소리도 크고 하고 싶은 일과 싫은 일의 구분이 확실한 아이라 아무래도 여리고 눈물 많은 둘째는 항상 맘고생을 했다. 그저 둘째라 괜한 서러움이 있어 그런가 보다 하는 마음으로 적당한 중재만 하던 나는 원장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소소하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자 다짐했다.

둘만의 시간이라고 해봐야 셋째를 아기띠에 대롱대롱 매달고 동네 공원이나 근처 놀이터 벤치에 앉아 바나나우유를 마시고 오는 정도였지만 신기하게도 아이의 눈물이 점점 줄었고, 엄마와 떨어져 있는 어린이집에서의 시간은 안정적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4살부터 시작한 둘째와의 <목요일의 비밀데이트>는 6살까지 이어졌고 엄마가 출근이라는 걸 하면서부터는 어쩌다 한번 둘째가 사인을 보내면 짬을 내 잠깐씩 하는 이벤트가 되었다.


그리고 이 비밀데이트를 통해 여리고 감성적인 아이는 물론 나도 둘째와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아주 다른 삼형제를 대하는 태도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눈물 많고 감성적인 아이를 이해하게 만들어준 마법 같은 한마디, 그래 그럴 수 있지.


왼쪽 신발을 오른쪽에 못 신게 한다고 아침부터 목을 놓아 울어대는 너, 그래 그럴 수 있어

엄마가 오른쪽 손으로 내 손을 잡아야 하는데 반대손으로 잡는 게 너무 슬프다며 우는 너, 그래 슬플 수 있지


이 마법 같은 문장 하나로 인해 아이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와는 다른 아이를 그저 울기만 하는 아이가 아니라 그저 감정이 섬세한 아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올해 10살이 되어서 제법 키도 부쩍 자라고 씩씩하게 슈퍼도 편의점도 혼자 슝슝 다니는 아이는 아직도 눈물이 많고 감정의 오르내림이 잦아 나를 종종 당황하게 만들지만, 이제는 본인의 속상함을 눈물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말로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름 이제는 '사회생활'을 하는 아이가 되어서 집 밖에선 젠틀하고 다정한 둘째씨로 선생님들마다 친구의 엄마들마다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한다.

집에서는 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사람이 됐구나 싶다.


훌쩍 자라 변한 둘째를 오랜만에 만나는 내 지인들은 엄마의 수고를 칭찬하곤 한다. 하지만 난 우리 아이의 자라남은 오롯이 아이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바쁘게 키 크느라, 동글동글 얼굴에 살도 오르느라 바쁘고 정신없을 텐데 엄마가 알려준 눈물대신 <이야기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를 기억해 내고 실천했던 오롯이 아이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둘째의 성장이다. 기특한 녀석.


하지만 오늘도 형아는 밥이 적고 동생도 밥이 적은데 내 밥은 너무 많다고 울먹이던 너를 보면서

<그래 어제는 된장찌개에 밥 두 그릇을 먹었지만 오늘의 넌 그럴 수 있지>

겨우내 신던 털 달린 크록스를 집어넣고 여름 크록스를 꺼내놓았더니 아직 따뜻한 신발과 이별할 수 없다며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너를 보면

<그래 한낮 온도가 24도까지 올라가지만 너는 폭신한 털신이 좋을 수 있지, 그럼 그럴 수 있지>


오늘도 그래 그럴 수 있지의 마법은 계속된다.


제일 좋아했던 귤색 마카롱과 귀여운 둘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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