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가 개미 발톱만 한 엄마의 반성
올해 6학년 첫째 아들이 동네 친구와 베프가 되었다고 한다. 1학년때부터 5학년때까지 이렇다 할 베프 친구가 없어서 내심 걱정을 하던 차였는데 물어보기도 전에 친구가 생겼다는 첫째 말에 어찌나 반갑던지.
그런데 그런 반가움도 며칠 못 갔다.
게임을 하면서 카카오 보이스톡을 하는데 세상에 미친 x와 숫자가 들어가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나 싶을 정도라 지금 저 아이가 우리 첫째 아들 또래가 맞나 싶었다.
그런 아이가 지난 주말 내가 1박 2일 회사 워크숍엘 간 사이에 우리 집에 놀러 와 밤 10시까지 놀다가 갔다고 한다. 미리 안된다고 말해 두었건만. 아이들끼리 하룻밤을 둘 수 없어 할머니와 아빠가 집에 와있었는데 처음 보는 어른들이 어렵지도 않았는지 4시쯤 와서 라면 끓여 먹고 저녁 같이 먹고 더 놀다 간다는 걸 전남편이 타일러 보냈다고 한다. 애들 할머니는 집에 돌아온 날 보자마자 한참 동안 그 친구 험담을 늘어놓고 지들 방에서 놀던 첫째는 어른들의 그런 험담이 속상한지 울상이다.
이럴 때 난 참 어렵다. 어떻게 설명해 줘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예의와 매너를 가르칠 수 있을지, 무조건 적인 수용이나 거절 말고 매너 있게 거절하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을지 골머리를 앓는다. 큰애를 앉혀두고 그 친구의 행동은 예의 없고 어른들에게 아주 큰 실례라고 한참을 설명해 줬다. 그 친구는 아무도 안 알려줬으면 모를 수 있지만 너는 이제 알았으니 다음에 또 그런 상황이 된다면 친구에게 먼저 말해주고 알려주자고 좋게 얘기한다고 했는데 첫째는 눈시울이 벌겋다.
토요일에 그런 일이 있었고 월요일 저녁 7시쯤 난데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퇴근 후에 한창 저녁 차리는 중이라 첫째가 나갔는데 대뜸
-엄마 ㅇㅇ이가 놀러 왔어요. 놀아도 되지?
한다.
나도 베알이 꼴렸던 거지, 쟤는 참 눈치도 없다 생각하며
- 지금 저녁 먹을 시간이고 늦어서 안돼, 내일 놀자고 해.
라며 반갑지 않은 그 아이의 방문을 차단했다.
저녁을 먹으며 첫째에게 왜 저녁 먹는 시간에 남의 집을 가면 안 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다가 문득
<혹시 아이를 챙겨 줄 어른이 없나, 그래서 혼자 저녁 먹기 싫어 일부러 왔나..> 하는 생각에 멈칫했다.
그 친구도 한부모 가정에 매일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엄마와 말수가 없으신 할아버지와 산다던데, 내가 너무 메몰차게 거절했나 후회가 됐다.
맘을 곱게 써야 곱게 나이 먹는다는데.. 난 곱게 나이 먹긴 글렀구나 싶다. 담에는 정식으로 초대해서 같이 저녁 먹고 늦게까지 놀다 가라고, 친구네 집에 늦은 시간 방문할 때는 이렇게 초대받아 오는 거라고 알려줘야지. 혹시 알아.. 나중에 우리 아들 중 한 명이 남의 집 저녁식사 시간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 노릇을 할지..
첫째와의 에피소드가 유독 많은 건 나도 처음 하는 경험이라 그런 것 같다. 둘째도 셋째도 항상 다사다난하긴 마찬가지인데 내 기억에 많이 안 남는 걸 보면 첫째를 키우며 한 번쯤은 다 겪어봄직한 상황이 반복되어서 인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둘째와 셋째에게 엄마는 쿨하고 멋진 엄마지만 첫째에게 난 쪼잔하고 잔소리 많은 엄마다. 이럴 때 난 당당하게 댈 수 있는 핑계가 있다
<나도 첫째 엄마는 처음인걸>
하지만 핑계를 대는 엄마는 속으로 늘 부끄럽다. 좀 더 멋들어지게 행동해서 첫째가 보기에도 쿨하고 멋진 엄마가 되고 싶은데, 현실은 쫌팽이 속 좁은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