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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씨 Sep 01. 2023

6년 만에 한밤중 응급실을 다녀오는 길

뻥 뚫린 서울 한복판 도로 위에서 실없는 생각들

(1)

삼형제가 자라남에 따라 이제는 소아과에 갈 일이 별로 없어서(가정의학과나 내과로도 충분히 삼형제 진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연일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들의 소식과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 재밌어 보였다며 콧속에 솜뭉치를 쑥 집어넣고 아프다고 우는 셋째를 데리고 응급실을 갔는데 (달빛 어린이 병원에선 호흡기가 관련되어 있으니 이물감이 있다면 응급실로 가라고 알려줌) 첫 번째 병원에선 입구에서 카트!! 의사 선생님까지 나오셔서 소아를 볼 수 있는 선생님이 없기 때문에 여기 말고 더 큰 병원으로 가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접수도 못해보고 발길을 돌렸다.

길 한 복판에 서서 전화를 해본 엄청 큰 응급실에서는 '지금 응급 환자가 너무 많아서 오시면 내일 아침에나 진료 보셔야 할 수도 있어요.'

응급환자가 너무 많은데 소아 진료 보는 선생님이 한분뿐이라 오래 걸린다고.. 그렇게 몇 번 더 전화를 돌리고 나서야 소아과 선생님은 안 계시지만 우선 와보라고 말해주시는 감사한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계신 병원으로 택시 타고 고고!

이쯤 되니 소아과 선생님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와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지고 있다는 뉴스 속 인터뷰를 했던 어떤 애타는 부모의 모습이 내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2)

첫째네 반에 학폭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학폭의 가해자인 아이가 며칠 전에 장난을 치던 첫애를 밀어서 넘어트리고 도와준답시고 옷을 잡아당겨 옷을 찢어 먹은 바로 그 아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사건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지점에 1호가 발을 담그고 있는 상황인 걸로 파악이 되었다. 

(사실 가해 아이의 부모와 원만히 해결을 하기 위해 통화를 해둔 상태,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이야기와 진심으로 사과하는 그 엄마의 목소리에 학폭위를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말았는데 며칠 사이에 큰 사건이 벌어졌다. )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담임선생님은 우리 첫애가 다친 바로 그날 빈혈이 있다며 조퇴를 해버리시고, 사건은 두 학부모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전화번호 딜리버리만 해버린 상황

첫애는 선생님이 이 일은 친구를 놀린 니 탓이라며 때린 가해 학생보다 첫애를 더 많이 혼냈다고 하길래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대면 상담을 요청해 두었었지만 아무래도 서이초 선생님과 그 이후 쏟아져 나온 진상학부모 이야기를 듣고, 보고 나니 학교와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하는 것도 상담을 요청하는 것도 내심 불편하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연락을 안 할 순 없지만 내가 지금 하는 전화와 문자가 선생님들 사이에 진상학부모로 조리돌림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나는 진상일까? 되돌아보게 되는 요즘


(3)

소아과 전문의가 점점 줄어들어 사라지다시피 하고 담임선생님과의 소통이 어려워지는 이것들의 시작은 어디일까.

어쩌면 내 아이, 내 새끼만을 앞세워두고 갑질을 하는 엄마, 아빠라는 이름뒤에 숨은 수많은 나 자신이 아닐까.

결국은 내가 뱉어놓은 그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어제의 나처럼 응급실 문 앞에서 문전박대당하고 다시 택시를 잡아타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서 진료가 가능한지 확인해야만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겠지.

아이가 학교 가기를 겁내하고 불안해하고 있어서 등교 문제나 가해 학생 분리 관련하여 상담을 받고 싶었지만, 학부형이 학교와 선생님에게 연락하는 것조차 세모눈을 뜨고 바라보게 되는 이 상황이 만들어진 거겠지.(실제로 큰애가 휴대폰을 두고 다녀서 급한 맘에 교실로 연결하는 전화를 했다가, 왜요? 왜 전화하신 건데요? 왜 교실에 직접 전화하세요?라는 질문을 3 연타로 받아버렸다. 휴대폰은 꼭 가지고 등교하는 걸로...)

이제 와서 어떻게 나라에 아이들을 위한 것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내 아이가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 담임섬생님이 도움은커녕 연락을 피하고 애들 탓만 하고 있다고 탓할 수 있으랴.

결국 어른의 이기심으로 인해 벌어진 이 모든 일의 피해는 고스란히 어린이들에게로... 그 어린이들을 키워내는 나에게로 돌아왔다. 


응급실을 다녀오다 말고 느닷없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진지하고 실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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