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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씨 Sep 02. 2023

그래서 엄마, 운전면허 시험은 붙은 거야?

길치・방향치로 살아온 40년, 베스트 드라이버의 꿈을 꾸다.

어느 날 훌쩍 차키를 챙겨 들고 멋지게 운전석에 앉아 창문을 활짝 열고 바닷가로 떠나,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잔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는 상상, TV에서 나오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보며 옆에 앉아 있는 삼형제에게 '우리 지금 저거 먹으러 갈까?' 하는 상상


나는 길치, 방향치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휴대폰으로 보는 지도를 보면서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 들어간 건물에서 일을 마치고 나올 때 처음에 왔던 방향을 찾을 수가 없다.

길치와 방향치의 영역이 차도로 연장되지만 않으면 사실 살아가는데 무리가 있진 않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생겼다. 마음속 깊은 곳, 상상만으로 남겨놨던 작은 로망들을 현실에서 이루고 싶어졌다.


언젠가 서초동에서 성남으로 들어가는 길, 데려다 주시던 아버지께 길을 잘못 알려드려 유턴 없는 길을 30분동안 달리게 했던 밤. 자취방 앞에서 날 내려주시며 아버지는 깊은 한숨과 함께 말씀하셨다. '넌, 운전하지 마. 배울 생각도 하지 마. 너 같은 길치, 방향치 애들이 운전을 배워서 자신감을 얻으면 김여사가 되는 거야.'

아니 아버지, 이렇게 상처되는 말을 그렇게  진심을 담아 하시다니.. 상처는 되었으나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 맞아. 괜한 욕심부려 세상에 민폐 끼치고 물질적 신체석 위해와 손해를 감수할 바엔 택시를 타고 다녀야겠어.라고 다짐 한 후 무려 20여년 만에 운전면허 취득을 결심했다.


삼형제에게 운전을 배우겠노라, 엄마가 학원을 가고 연습을 하는 동안 너희는 집에 얌전히 안전하게 있도록 하여라! 선포한 후 필기시험을 한방에 합격했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와 나 교통법규 좀 아네? 공부 많이 안 했는데 막 붙었어. 나 짱이야. 이런 자만심 가득한 기쁨도 잠시, 실전은 상상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무슨 용기에서 시작한 1종 보통, 트럭 운전은 맘같이 되질 않았고 기능시험에서 세번이나 떨어지고 난 후 주변 베스트 드라이버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2종(?)면허 취득을 목표로 바꾸고 첫 기능시험에서 합격했다. 드디어 그녀의 손에 주어진 합격 목걸이!

우습게도 기능시험에 붙은 그날부터 무수히 많은 긍정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가까운 오토캠핑도 가고, 바닷가도 가야지.

그동안 못 데리고 가본 가평 어딘가 깊숙이 있는 풀빌라도 가야지. 짐도 바리바리 싸들고, 맛있는 것도 잔뜩 들고 가야지.

매일매일 쿠팡과 네이버를 들락이며 즐거운 상상을 했다.


즐거운 상상은 도로연수 첫 시간이 되어서야 현실에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다. 학교를 다니며 수백 번은 오갔을 그 동네가 그렇게 낯설고 위험한 길인지 몰랐다. 고속도로에서 나오는 차들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우회전을 기다리며 거울로 보이는 뒤차는 날 너무너무 재촉했으며 유턴을 해야 하는 8차선대로는 너무너무 좁았다. 이 역시 돈을 더 써가며 남들보다 두배로 연습을 했으나 4번의 시험을 또 내리 떨어졌다.

그 뒤에 깨달았다. 아, 난 운전은 아니구나. 내가 헛된 꿈을 꾸었구나. 필기시험 후 1년의 시간이 지났고 난 더이상 시험을 보러 다니지 않는다.


이제는 운전면허의 운자도 꺼내지 않는 나에게 종종 큰애가 묻는다.

'아니 엄마 면허시험은 어떻게 됐어?'

'시험을 다 보긴 했는데 다 떨어졌어. 무서워서 이제 안할라고. ‘

'연습해도 계속 무서워? 연습을 좀 더 해보면 어때? 안된다고 안 하기엔 너무 아깝잖아?'

(이 녀석... 내가 그동안 지한테 했던 말을 고대로 되돌려준다.)

'그치... 근데 지금은 너무 무섭고, 엄마가 시간이 없어서. 언젠가 너무 늦지 않게 용기를 내서 다시 도전해 볼게. 근데 네가 따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어.'

'어휴. 엄마 용기 내서 해보자. 지금 포기하면 언젠가 후회할 거야. 그러니까 포기하진 말자 알았지? 힘내!'

'응 알았어. 엄마 포기 한건 아니야. 그러니까 좀만 기다려줘.'


큰애의 입에서 나온 익숙한 것 같은 저 말들이 신기하다. 내가 그동안 했던 말을 마음속, 머릿속 저금통에 꼭꼭 모아뒀다가 적재적소에 써먹는 저 녀석이 기특하고 신기하다.

내가 삼형제와 대화하는 방법과 소통하는 방식이 옳은 방향인지, 잘못된 방향인지 알지 못한다. 확신도 없다. 하지만 내가 저리 키웠고, 삼형제가 그리 커줬다. 내가 해왔던 대로 큰 것이 지금의 삼형제의 모습이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하는 말을 똑 부러지게 하는 저 녀석이 참 기특하고, 대견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동해로, 서해로 떠나는 우리 가족의 모습 상상하기를 그만두지 못하겠다.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길 바라 본다.

지금의 너의 모습처럼.

면허를 따면 이렇게 멋진 캠핑장이 가고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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