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뉴스의 덧글을 보고 난 후 정리하는 생각들
서이초, 안타까운 일이었다, 애달픈 마음이 들어 안타깝다라는 단어 이외에 쓸 수 있는 단어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도대체 선생님이 무얼 어디까지 해줘야 하길래 그렇게 들들 볶아서 세상을 등지게 만들었는지, 그래서 그 학부모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본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선생님을 향한 날 선 말들과 공격의 의지를 가득 담은 칼날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 난 그 속은 멀쩡했을까?
기가 막힌 상황 속에 돌아가신 선생님의 남아있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할 그 앞날이 안타깝다.
선생님의 49제를 며칠 앞두고, 또 비극이 일어났다.
항간에는 문제아들이 잔뜩 모여 있는 반이었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었는데 안일한 학교의 대처로 인해 아까운 선생님이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런일이 생겼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기사를 내리는데 페이지 맨 아래 맘충을 넘어서 악마 같은 애엄마들이라는 덧글을 봤다. 아이 셋을 키우는 13년의 시간 동안 폐라도 끼칠까,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하여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맘충이 아니라 악마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뉴스를 가만히 보다가 최근 일어난 우리 큰애네 반의 일을 생각해 봤다.
가해자 아이의 문제행동은 5학년부터 보였다고 했고, 6학년 초부터 인지를 하고 있었던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저 친구와의 트러블을 최대한 피하라는 식의 문제대응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피해는 내가 입었는데 왜 우리가 피하고 우리가 조심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쌓일 대로 쌓인 상태였고. 우리 첫째도 '내가 맞았는데 선생님은 내가 먼저 놀려서 이렇게 된 거라고 나한테 화를 더 많이 냈어'라고 했다.
처음엔 무슨 일처리를 저따위로 하지? 우리 애를 싫어하나? 우리 애가 지금 선생님한테 미움받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며칠새 생각이 좀 바뀌었다.
생각해 보니 그 교실 안에는 키 165에 몸무게 70킬로인 거구의 6학년 남자아이가 통제 불능인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고,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규칙과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가해 아이의 공격대상이 현재는 반 친구들이지만, 어느 순간 선생님이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 선생님도 사람이니까 무서웠을 테지, 최대한 그 아이를 자극하지 않고 문제가 더 이상 커지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가해 아이를 단속하기보다 피해자인 아이들에게 우리가 조심하자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9/4 월요일 서이초 선생님의 49제를 위해 아이들의 체험학습을 권하는 학교의 알리미를 받았다. 이왕 이렇게 하실 거 목요일이나 수요일쯤 보내주셨다면 뭔가 대비를 하거나, 다른 일정을 잡거나 했을 텐데. 학교의 대처가 많이 아쉽다.
삼형제의 선생님 중 한 분은 진즉에 9/4까지 병가를 써둔 상태이고, 한 분은 종례시간 아이들에게 월요일에 학교 오면 안 되니까 엄마한테 체험학습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하셨고, 한 분은 알리미를 한 시간에 한 개씩 보내며 체험학습 신청서 제출을 종용하였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국민이 현재 일어난 안타까운 일들에 공감을 하고 함께 분노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교육부의 대처와 학교장의 대처가 부족하다 하여 선생님들까지 이런 식의 일방적이기만 한 행동을 하셔야만 했을까. 휴가를 내는 엄마들은 하루 전 급하게 휴가를 내느라 회사의 눈치를 볼 테고, 휴가를 내지 못하는 맞벌이 엄마들은 학교의 눈치를 보며 아이를 등교시키겠지. 하교한 아이는 저녁 내내 다른 친구는 다들 안 왔는데 난 갔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왔다고 나도 안 갔으면 좋았겠다는 원망 섞인 이야기를 듣게 되겠다.
충분히 공감하고 분노하고, 응원하던 내 마음이 짜게 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