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바뀌어 39살이 된 내가 너무 어색하다
별 볼일 없는 경단녀
할 줄 아는 게 너무 많아 나에게 주어진 일은 거의 다 잘 해결하고 넘어가는 편
얕고 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강남역 한복판에 아무나 붙들고 서서 대화를 해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세 아들의 엄마
80년대에 태어난 40살 아줌마
나를 규정하는 말들이 참 많다. 어쩌면 저 말들은 나 스스로 적당히 만들어두고 그것을 리미트 삼아 숨을 구석을 만들어두는 내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사실 난 별 볼 일 없는 경단녀지만 번듯한 직업을 가졌고, 할 줄 아는 게 너무 많아 어떤 일이든 척척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어떤 대화 주제에도 위화감 없이 스며들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진, 토끼 같은 삼형제의 멋쟁이 40살 엄마라는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여자의 자랑질일 수도 있겠다. 이 얼마나 무례한 자랑질인지...
저 말들이 방어기제든 자랑질이든 요즘의 난 부쩍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살면서 쌓아온 지식들로 커버되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자꾸 초대된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꿀 먹은 벙어리로 앉아 있다 올 수 없으니 아무 말이나 끼워 맞춰서 해보려고 발버둥을 쳐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하루종일 뭐 한 거지>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진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너무 부끄럽고 불쾌하다.
이 불쾌함은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들 때문이 아닌 책 몇 권, 글 몇 줄 읽으며 쌓아온 지식으로 그럭저럭 잘 살아온 내가 너무 하찮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에 대한 불쾌함이다.
새로운 공부에 도전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 결정의 시작은 위에서 적어 내려 간 그 불쾌함 때문이었다. 넓고 얕은 지식 말고, 한 가지 분야에서 깊게 공부하여 나도 저 멋진 사람들처럼 진득하니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질투심이었다. 근데 뭐 또 질투심이면 어때. 무기력하게 하루를 살아낼 뿐이던 내가 하고 싶은 게 생기고 읽고 싶은 글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지.
잘할 수 있을지, 목표한 기간 안에 뭔가 이뤄낼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진득하니 엉덩이로 하는 공부가 하고 싶어 졌고, 배움에 대한 아쉬움과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생겨났다. 욕심을 부리자면 아이들의 눈에 비친 내가 매일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그저 그렇게 늙어버린 엄마가 아닌 언제나 총명한 눈빛을 반짝이며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더한 욕심으로 나의 반짝임이 우리 삼형제에게 응원이 되어 앞으로 뭐든 할 수 있겠다 생각하며 자라길 바란다.
답지 않게 사족이 긴 이유.
사이버대에 편입했다. 전부터 관심 있던 분야에 민간 자격증 같은 걸로 간을 좀 보다가 덜컥 편입을 해버렸다.
하루를 쪼개고 쪼개서 삼형제 키우고,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돌보느라 잠잘 시간도 부족한 내가 사이버대에 편입을 해버렸다.
아 사실 이렇게 덜컥 될 줄 몰랐지, 그때 뭔가에 홀려서 막 입학신청서도 넣으면서도 뭐 되면 다니지 뭐~ 까짓 거라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23으로 시작하는 학번을 받아 들고 나니 큰일 났다 싶다.
우선 8월의 고구마씨는 즐겁게 놀고 9월의 고구마씨는 열심히 공부하는 걸로, 늘 사고는 지난달의 내가 치고 수습은 오늘의 내가 하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