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편협한 나의 인간관계 속 따뜻한 사람들
나는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 때까지 이렇다 할 친구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람을 사귀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수술을 받느라 남들이 다 친해진 다음에야 첫 등교를 했고, 그렇게 15살 때까지 병원을 들락날락했는데, 짓궂은 아이들의 과한 놀림과 괴롭힘을 한 명의 친구도 없는 교실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친구가 없을 뿐 따돌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든지 모르고 지나갔다. 그게 따돌림이었다는 건 중학교 3학년 때 잠시 친해졌던 반아이가 알려줬다.
어린 시절 새 학년이 되면 새로운 반과 선생님,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설렌다고들 하는데 난 작년에 우리 교실과 다른 어떤 학급문고의 책들이 있을지 더 궁금하고 기대됐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말썽을 부리는 학생도 아니었다. 사실 하루종일 책을 읽느라 공부를 할 틈도, 말썽을 부릴 틈도 없었다.
학급문고에 꽂혀 있던 남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책들과 시립도서관 열람실에 가득 들어가 있는 종이향 가득 베인 소설책들과 학교 앞 대여점에 있는 먼지 쌓인 만화책까지 글씨가 들어가 있는 종이는 모조리 읽었다.
읽느라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었고 자연스레 늘 혼자 있는 아이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의 상황을 말하자면 누가 나를 왕따를 시켰다기 보단 혼자 재미있게 노느라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짓궂은 장난도 그냥 넘길 수 있었던 건 빨리 이 다음장을 봐야 하는데 왜 저래? 하는 맘이 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보내고 나서 중학생이 되었는데 같은 반 친구 중에 하루종일 만화책을 읽는 친구가 있었다. 같은 관심사로 친구가 되었고 학교에서도 학교가 끝나고 나서도 늘 붙어 다녔다.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즐겁다는 걸 배웠고 처음으로 다른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한 번도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해보지 않은 사람의 노력은 서툴 때가 많다. 행동도 말도 또래 친구들과는 사뭇 달랐고, 좋아하는 가수도 드라마도 없었던 나는 늘 서툴렀다. 싸움의 당사자가 되는 일도 많았고 친해진 거 같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나를 따돌리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실패의 경험은 최선을 다해 나를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어 다가오는 친구들을 경계하고 안 해도 될 말들로 상처를 준다. 결국 친한 친구가 단 1 명인채로 초중고 12년을 마무리했다. 이쯤 되면 내 성격도 문제가 단단히 있는 게 틀림없었지만 알도리가 없었다. 아무도 말해주지도 않았고.
늘 문젯거리의 중심에 서있는 나를 동기들과 선배들은 불편해했다. 그렇게 고등학생때와 달라지지 않았던 날들을 보내고 있던 내 앞에 아주 멋진 선배가 나타났다. 똑 부러지고 말도 잘하고 못하는 거 하나 없는 인간적으로 본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선배의 모든 점이 20살 내 눈에 전부 멋져 보였다. 먼저 가서 인사하고 먼저 가서 놀아달라 하고 먼저 연락을 해 안부를 물었다. 그 선배를 통해 사람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유지하는 방법을 배웠다. 아마도 살면서 만난 사람 중 내가 제일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선배일 것이다.
20대 중반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내 몫의 일은 최선을 다했다. 가족보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퇴근하는 새벽길 맛있었던 떡볶이, 우중충한 회사기숙사. 그렇게 동거동락하며 고군분투했던 후배와는 친구가 되었다.
20대 후반엔 전남편을 만났다. 조금은 까칠하지만 자기 직업을 사랑하고 잘하는 남자는 너무 멋졌다. 그 남자가 내 인생에 들어와 어떤 폭탄을 던질지 모르고 참 열심히 사랑했다.
30대엔 삼형제 덕분에 육아가 공통 관심사인 친구들이 생겼다. 육아에 치여 다크서클이 가득한 눈으로 다정하게 웃으며 얘기하는 언니도, 우스갯소리 한마디에 하루의 육아스트레스를 날려주는 친구들도 생겼다. 기쁜 일 엔 웃으며 함께 기뻐해줬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나보다 더 속상해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나랑 참 다른 사람들이 나를 참 예뻐주며 나를 살게 했다.
특히 첫째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아이와 나에게 참 멋진 곳이었다.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늘 즐거웠다, 그때 나는 차마 입 밖으로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있는 게 너무 즐거워 고단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웃고 떠들고, 서로 응원하고 위로했다. 아마 그 시절과 지금을 여전히 살아 버틸 수 있던 것은 모두 30대에 만난 육아동지들 덕분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난 아마도 더 많은 걸 잃고 포기한 삶을 살았을 거다.
39살에는 쓰잘데기 없는 말에 낄낄 거리며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일상이 아무리 움직여도 끝날 것 같지 않던 날 <돌아버릴 것 같다>는 카톡 한 개에도 각종 드립이 난무하는 말 그대로 싱거운 농담들로 하루종일 떠들 수 있는 친구들이다. 누군가는 왜 그런 모임이 필요하냐고 하지만 나에게는 버거운 일상 속에서 웃을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아들 셋 딸린 이혼녀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놀리며 다 같이 낄낄 웃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혼을 하고 나서 세상에 이제 동그마니 나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막막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던 시간이었다.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는데 도무지 어느 방향으로 한발을 내딛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외롭다는 감정만 남아 날 더욱더 외롭게 만들었다.
종종 외롭지 않냐라는 질문을 듣는다. 아직 외롭다는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난 외로운 사람이 아니다.
전화통을 붙잡고 한나절 떠들어줄 언니가 있고, 느닷없이 전화해서 생떼를 부리며 울어대는 마흔 살 막내딸의 투정을 들어주는 아빠가 있다. 생각나서 전화했다며 생사를 물어주는 친구가 있고 다음생에는 울산바위옆 꽤 괜찮은 돌덩이로 살고 싶다는 날 위해 울산바위 구경을 시켜주는 멋쟁이 친구도 있다. 이제는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워킹맘의 삶을 사는 멋진 선배가 여전히 있고 눈물이 하염없이 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날엔 늦은 시간까지 위로해 주는 친구와 처음으로 사귀어본 유난히 맘 잘 맞는 동네 친구들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만큼 사랑스러운 삼형제가 있다.
외롭다는 생각을 하기에 나의 좁고 편협한 인간관계가 꽤나 깊고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2년 전쯤 살면서 처음으로 용하다고 소문난 무당에게 신점을 본 적이 있는데 내 노후를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해 줬다.
<인복하나는 확실하게 타고난 인간이니 주변 사람들한테 잘하고 살아라>
그때는 이왕이면 남들 다 타고나는 돈복이나 남자복도 좀 주지 인복만 줬다고 집 앞 성당 입구에 서서 한참을 하느님께 투덜 댔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 인복 덕분에 내가 나로 살아가고 있다.
여러분, 전 지금 잘하고 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