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사랑의 생애> 중에서
우리의 이혼사유를 예상해 본다. 아직 반지도 서류도 나누지 않은 우리지만, 끝에서 앞으로 오는 나의 상상력은 이 관계에게도 예외가 없다. 세 쌍이 결혼을 하고 그중 한 쌍은 이혼을 한다는 세상에서 결혼과 이혼은 어쩌면 한 묶음인지도 모른다. 열었을 때 3분의 1로 꽝이 나오는 그런 묶음 상품처럼.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이혼사유를 떠올려 보는 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결혼의 고비는 7년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이혼 커플은 8년 차를 못 넘기고 헤어졌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들고 일상에 치여 마음속 따닷한 것들이 사그라드는데 7년이 든다더라. 우리의 7년 차에는 어떤 이혼사유가 찾아올까.
아마도 “성격 차이”가 가장 유력할 거다. 성격 차이라니 얼마나 편한 말인지. 인간과 침팬지와 고양이와 강아지를 모두 묶어 “동물”이라고 묶어서 칭할 만큼 너무나 광범위한 명칭이 아닌가. 그래서 ‘성격 차이 말고 진짜 왜 헤어진 건데? 왜 5천만 원짜리 세리머니까지 해놓고 없던 셈 치는 건데?’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열의 한 명쯤에게는 솔직하고 구구절절하게, 그 질문을 한 걸 후회할 정도로 집요하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운동화 뒤축을 구겨 신어야 하는 사람이고 그는 오래된 운동화를 신을 때도 구두 주걱을 써야 하는 사람이고, 나는 밥을 먹고 나면 바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 사람이고, 그는 다음날까지 그걸 미룰 수 있는 사람이고. 나는 분리수거가 귀찮은 사람이라면 그는 과자봉지도 씻어 버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자신에겐 짜게 굴었지만 나에겐 후했고, 나는 나에게 후했지만 그에게는 짜게 굴었다고.
아, 더 설명하기 어려운 자잘한 것들. 밤새 말해줘도 너는 모를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 사이에 거대한 산을 만들었다고. 누군가가 사랑은 사람을 숙주 삼는다고 했다. 사랑이 기생하면 숙주는 어쩔 수 없이 사랑에 속절없이 “빠져” 버린다고. 사랑에 지배를 받는 우리임에도 서로의 밑바닥을 한 패씩 까다보면, 그 대단한 사랑도 놀라서 도망가버리는 건지. 그 시간이 7년이면 되는 건지.
사랑의 유통기한을 재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사랑은 호르몬의 영향이라고. 연애 초기에는 도파민과 페닐에틸아민 등 각성 호르몬이 분비돼 설렘과 행복감을 느끼지만, 2~4년 후에는 이 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들면서 권태기가 찾아온다.
이 호르몬이 우리에게 기생하는 사랑인 걸까? 사랑이란 게 호르몬 조절이 가능하다면 피임약처럼 섭취해서 영위할 수는 없는 걸까. 연애 초반의 간질간질함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식후 30분 뒤 먹을 수 있는 약으로 처방한다면, 비만 치료제만큼 불티나게 팔리지 않을까. 단점이 있다면 약을 먹은 사람들은 모두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누구든지 상관없이, 심지어 상대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다시 우리의 이혼사유로 돌아가서. 나는 너란 사람이기 때문에 호르몬의 영향을 받았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너와 내가 만든 이 시간과 감정들을 단지 호르몬이라고 치부하는 건 모욕이다. 또한 사랑의 종착지가, 그 완성물이 결혼이란 것 역시 또 다른 모욕이다. 사랑은 너와 내가 만들어낸 것이지, 어떤 증명서도 시험 결과지도 필요한 게 아니니까.
그래서 난 결혼은 믿지 않는다고, 그건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구구절절 떠드는 나를 너는 그저 바라보고, 할 말 다했냐고 물어본다.
"응 그게 다야 어때 내 논리가?"
"응 진짜 개똥 논리다. 하하."
내가 한 말들을 허공으로 흐트러트리는 그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따듯한 손의 온기를 느끼며. '이거면 됐지.'하고 생각을 멈춘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사랑이 마치 물이나 수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면 누군가 파놓은 함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난 사랑에 빠졌어,라고 말한다. 사랑이 사람이 빠지거나
잠길 수 있는 것인 양 물화시켜 말하는 이런 수사는
사랑의 불가항력적 성격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의 생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