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으려고 하면 이상한 게 나온다

이찬혁 <돌아버렸어> 중에서

by 고희수

얼마 전 에스컬레이터에서 앞에 선 할아버지가 매우 힙하게 입고 계신 걸 봤다. 셔츠에 청바지, 신발은 나이키 에어맥스를 신고 계셨다.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삐딱하게 선 모습이 꽤 힙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도 나이가 먹어도, 머리가 하얗게 변해도 계속 세련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세련이란 건 뭘까?


세련됨은 뭘로 정해지는 걸까. 할아버지의 차림새를 보고 힙하다고 평가했으니 입고 있는 옷을 기준으로 하면 될까. 그럼 나이가 들었음에도 그 시대의 젊은 세대가 좋아할 법한 브랜드의 옷을 챙겨 입으면, 그 세대의 트렌드를 계속 공부하면 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영포티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비꼬는 듯한 뉘앙스가 들어가듯, 그 나이의 자연스러움을 거부하는 건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즉 어색하다는 말이다.


그럼 돈이 많다는 걸 뽐내기 위해 명품만 사 입으면 될까. 그럼 좋겠지만, 경제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옷 하나 입으려다가 파산하기 십상이다. 가랑이가 찢어진다 이 말이다. 돈이 없는 내가 명품을 산다면 최대한 명품 티가 나는, 그때 유행하는 걸 사게 될 거고 그럼 또 그건 그거대로 촌스러워진다. 그렇다 이미 누군가의 기준에서 세련의 기준을 잡으려는 것 자체가 멋이 없다. 세련, 힙, 멋. 무엇으로 부르든 그런 건 내 안에서 고유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이 주제를 떠오르며 계속 생각나는 가수가 한 명 있다. 바로 이찬혁이다. 악동뮤지션부터 오늘날 솔로까지. 심지어 군입대 중에도 노래를 만든 성실한 아티스트다. 그런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으니, 악동뮤지션을 지나 이찬혁 그 자체 아티스트로 나오면서 지디병 걸렸다는 오명을 썼다. 특유의 제스처와 난해한 음악, 스타일에. 하지만 꾸준히 자신을 이어갔고 그 결과 이찬혁 그 자체가 됐다. 같은 걸 3년, 5년 계속 하니까 뭐가 있나 보다 한다. 오롯이 내 걸 한다. 사랑받으려 들면 이상한 게 나오고, 사적인 것일수록 그것이 쌓여서 하나의 세계관이 될 때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사실 난 요즘 글을 쓰는 게 너무 재미가 없다. 어떤 생각이나,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하면 술술 써서 어딘가 올리는 게 좋았다. 쉽고, 재밌었다. 그런데 요즘은 뭐랄까. 하기 싫다. 재미가 없다. 화, 금에 업로드를 하고 있는데 이 두 요일이 돌아오는 게 너무나 싫다. 글을 3달 정도 올리고 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없고 약간 부아가 치밀 때도 있다. 그럼 더 잘 써야겠다. 더 전략적으로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앞선다. 요즘은 이런 글을 쓰면 사람들이 읽어줄까? 이런 키워드를 넣으면 검색이 잘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재미가 없다. 이거로 뭐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성과에 매달리며 재미가 없어진다.


사랑받으려고 하면 사람이 이상해진다. 애를 쓸수록 없어 보이고, 재미가 없다. 연애도 너무 일방적으로 매달리면 매력이 없다. 글쓰기도 여기서 내가 자아실현을 하고,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모든 걸 이루고 싶다는 소망이 집중되기 시작하니까 재미가 없어졌다.


책 리뷰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일기도 아니다. 누가 읽기는 할까 싶은 내 글. 여기에 트렌디함을 입혀서 나이키 에어맥스를 신은 할아버지처럼 만들 수도 없고, 갑자기 명품이 될 수도 없다. 이찬혁은 더더욱. 그냥 내 글은 내 글이고, 꾸준히 뭐라도 지껄이는 내가 있는 것이다. 이게 뭐지 싶어도 일단 쓰고 올려본다. 그게 아티스트 정신이라고 믿으며, 이 일기도 선언도 아닌 글 같은 것도 말이다.


눈이 빙글빙글 돌아서

그냥 돌아버렸어

잡고 있던 줄이 다 썩어서

손을 놓아버렸어


박수를 치는 Crowd

내가 춤을 추는 줄 알지만

난 예전부터 Wow

그냥 돌아버렸어


머리가 핑 돌아서

그냥 돌아버렸어

다들 울퉁불퉁 모가 나서

나는 누워버렸어


갈 곳을 잃은 Clown

꽃을 전할 사람이 없네

맴돌다가 Wow

끝내 돌아버렸어

이찬혁 <돌아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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