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책 사줄게 프로젝트>에서 영감받음
텍스트 힙*이라던가 텍스트가 트렌드가 됐다. 책을 읽고 추천하고, 글을 쓴다. SNS로 좋은 글귀를 공유하고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변방의 축제였던 도서전은 티켓 구하기 힘들 정도로 흥행을 맞았다. 인스타그램 태그에서 ‘에세이’를 검색해 보면 200만 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책 추천’으로 검색하면 289만 개 게시물이 등장한다. 이상하다. 5초면 뚝딱하고 글 한편을 완성하며, 어떤 글이든 10 문장 이내로 요약해 주는 AI가 나왔는데, 사람들은 더 많이 글을 읽고 쓰고 있다.
*'텍스트힙(Text Hip)'은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Text)'와 '힙하다(Hip, 멋있다', '개성 있다)'를 합성한 신조어로, ‘독서 행위가 멋지고 세련된 활동으로 인식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특히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MZ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동향으로, 독서를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자기표현과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5년 전 잠시 출판사 마케터를 거쳐간 적 있다. 당시 책을 사는 주요 고객층은 4050 세대였고 밑으로 갈수록 줄다가 1020세대는 거의 전멸 수준이었다. 그래서 출판사는 정해진 한 세대의 독자들에게 팔 책을 계속해서 뽑아냈다. 당시 30대였던 나는 30대를 책을 읽는 마지막 세대로 정의했다. 내가 이제 글을 읽을 수도 없게 눈이 침침 해지고 육체가 지구를 떠날 날이 온다면, 텍스트도 같이 종말을 맞을 지도 모르겠다고.
처음엔 텍스트 힙이 AI와 쇼츠 시대에 들어선, 텍스트 종말을 앞둔 세대의 마지막 발악 같은 건 아닐까 생각했다. 1992년 10월 28일 자정, 지구가 멸망한다는 예언만 믿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들었다. 광신도들은 지구 멸망 전 하늘로 올라갈 수 있길 바라며 열광적으로 기도했다. 물론 아무 일 없이 끝났지만. 종말을 앞두고 교회에 모여 기도하던 광신도처럼, 이 세대는 해시태그 아래 모여 열심히 글을 나누고 읽고 있는 건 아닐까. 멸종 위기종, 이 세대에서 마지막으로 읽고 쓰는 사람들의 생존 본능 같은 것 말이다.
텍스트 힙 덕분에 종말은 유예된 것 같다. 신실한 독자들의 열심으로 텍스트는 2025년에도 살아남았다. 쉽게 쓰고, 읽을 수 있는 AI와 도파민 팡팡 쇼츠 그 사이에 텍스트. 우리의 시간을 두고 벌어진 전쟁 속에서 텍스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 역시 신실한 독자이기에 종말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시대가 변하고 매체가 달라질 뿐 텍스트는 계속된다고 낙관한다.
글자가 없던 시절엔 구전이 있었고, 소수만 텍스트를 독점하던 시절엔 그걸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험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고, 단순한 즐거움이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수단이 된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노아 하라리는 인류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이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단어의 파편을 끌어모으는 AI는 할 수 없는 능력이다. 더 좋은 이야기를 쓰고, 읽고 나누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혹자는 지금의 유행을 책을 읽지는 않으면서 사기만 하고, SNS 인증하려고 읽고 쓴다며 혹평했다. 그럼 어떤가. 시대에 따라 읽고 쓰고 향유하는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이 세대의 문화 속에 텍스트가 끼어들 곳이 있다면, 이 시류에 함께 탑승할 수 있다면 텍스트의 생명은 연장된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전국 독립 서점을 통해 ‘청소년 책 사줄게 프로젝트’가 퍼져 나가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이 프로젝트는 청주 독립서점의 단골손님이 청소년들을 위해 한 달에 3권의 책을 후원해 주겠다고 나서며 시작됐다. 이후 다른 후원자들이 나타나며 전국적인 운동이 되고 있다. 읽는 사람이 읽는 사람을 낳는다. 세대가 이어지고 이렇게 지구가 정말로 종말 하는 순간까지 텍스트는 계속될 것이다.
참고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김지원
https://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858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