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 몸이 하나였던 언젠가

플라톤 <향연> 중에서

by 고희수

어린아이였던 나는 보살핌을 받는다. 어딘가 생채기가 나면 엄마가 달려와 걱정스러운 말을 붙이며 밴드를 붙여줬고, 유아치가 흔들거리면 실에 묶어 나를 달래며 이를 빼주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내 몸을 돌볼 사람은 이제 덩그러니 나만 남았다. 엄마의 애정은 여전하지만, 어린아이를 보살필 때만큼 세세하게 내 몸을 돌봐주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다 큰 내가 같은 보살핌을 바라는 건 어쩌면 좀 징그러운 일이기도 하다.


칼을 쓰다 상처가 나면 외마디 소리를 내뱉고 알아서 밴드를 붙이고, 이가 아프면 병원비를 두려워하며 혼자 치과에 가면 그만이다. 내 몸이 보살핌 받는 단 감각은 그렇게 내가 성장하는 만큼 멀어져 갔다.


그런데 연애를 하면서 난 다시 아이가 됐다. 그 앞에서 난 어린아이가 될 수 있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여기서 피가 난다고 두 문장 이상으로 찡찡거릴 수 있다. 그는 내 몸을 곳곳이 살피면서 아프지 않은지 물어주고 흉 지지 않을까 염려해 준다. 그럼 아주 오래전 느껴봤던 안도감이 몰려온다. 난 보살핌 받고 있어, 내 아픔은 누군가에게 인지 되고 있어.


“이건 스무 살 때 술 먹고 집 가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진 흉터야.”


내 몸에 남은 흉터의 역사를 읊어주면 경청하는 그, 내 새끼손가락이 짧고 휘어있어 징그럽다며 웃는 그, 나를 안으며 살이 빠진 거 같다고 걱정해 주는 그와 만나며 내 몸이 두 개가 됐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몸의 흉터를 아는 사람, 그의 몸의 변화를 인지하는 나. 세상에서 단 둘만 공유할 수 있는 서로의 몸. 손 끝에 거스러미처럼 나만 알 수 있는 몸의 감각과 변화를 아는 또 하나의 사람. 또 하나의 몸. 마치 하나였던 것처럼.


플라톤의 《향연》을 보면, 인간은 원래 남성과 여성을 한 몸에 지니고 태어난 것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리 인간들의 성이 셋이었네.
지금처럼 둘만, 즉 남성과 여성만 있는 게 아니라
이 둘을 함께 가진 셋째 성이 더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의 이름만 남아 있고 그것 자체는 사라져 버렸지.
그때는 남녀추니가 이름만이 아니라 형태상으로도
남성과 여성 둘 다를 함께 가진 하나의 성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의 이름이 비난하는
말속에 들어 있는 것을 빼고는 남아 있지 않네.

인간은 한 몸으로 태어났고 그걸 질투한 신이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반쪽 짜리 인간은 서로를 찾아 헤매다, 다른 반쪽을 찾으면 헤어지지 않으려 꼭 껴안고 굶어 죽어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신은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생식기를 만들어 주고 새 생명이 싹트도록 했다. 그리스 철학자는 이걸 에로스(사랑)의 기원이라고 했다.

영화 헤드윅 <origin of love> 중


우리는 여전히 반쪽의 몸을 찾아 헤맨다. 일종의 허기처럼 온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 반쪽의 몸을 찾아다닌다. 이 사람의 몸은 내 몸과 맞을까. 잃어버린 내 반쪽이 맞을까. 한껏 껴안고 살펴보고 탐닉한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기원처럼 모든 피부의 면적을 다 맞대려는 듯. 그 순간 허기는 잊혀진다. 동시에 그만큼의 두려움도 밀려온다. 다시 찢어지는 고통을 겪을까 봐. 두려워서 매달리고, 더 깊이 파고든다.


그렇게 사랑하다 그와 헤어지면서 내 몸이 갈라지는 아픔으로 이별을 맞는다. 난 다시 아픔을 나누지 못하고, 스스로 외엔 돌봄 받을 사람이 사라져 버린다. 내 손 끝에 거스러미는 이제 나만 아는 감각이 된다. 그와 나누던 체온은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나는 또 하나의 몸을 잃어버린다.


에로스의 결과는 쾌락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에로스는 고통에서 기원했다. 몸이 찢어지는 고통, 반쪽을 잃어버린 고통. 내 상처를 돌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듯, 사랑과 고통은 한 몸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랑에 실패해 본 사람은 안다. 지금의 아픔이 전부가 아니고 곧 지나갈 거란걸. 그 아픔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불가항력처럼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될 거란 걸. 신이 갈라놓기 전 나와한 몸이었던 그를 찾아 나설 거란 걸. 나의 흉터, 허물, 체온. 모든 걸 나눌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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