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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세 Sep 06. 2023

2023. 6. 설○○에게

오늘은 날이 더워 혹서기 일과라는 것을 하게 되어 저녁 9시에 잠이 들어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지난밤은 끝도 없이 캄캄한 실타래였다. 얽히고설켜 하늘을 무성하게 메웠다.

요즈음 나는 시간이 많다.

실 한 끝을 잡고 한 올 한 올 밤새 풀어내었다.

풀벌레가 찌르르 울고 더운 바람이 숨죽여 샛잠을 자던 밤, 나는 마침내 실타래 사이에서 찬란하게도 밝은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별 하나. 별 둘. 별 셋.

너도 별을 좋아하니 보았을 것이다.


곧 하지구나. 그래, 여름밤은 짧았다.

개구리가 많이 울던 밤, 나는 젊음이 시드는 것이 무서웠다.

초승달이 어슴푸레하게 뜨던 밤, 나는 춥고 외로운 겨울이 무서웠다.

짙고 깊은 그믐밤, 셀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빛나던 별들 사이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았다.

자유로운 물고기야. 너는 어느 별에서 와서 어느 별로 가고 있느냐.


짧은 여름밤이 지나고 이제 해가 뜨는구나.

무성했던 우리의 여름은 곧 지겠구나.

나는 안다. 너의 여름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가을은 때론 쓸쓸하고 서글플 것이다.

뜨거웠던 열정을 행복으로 바꾸어내는 것은 내겐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친구야.

나는 보았다. 너의 가을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견우와 직녀가 백조와 먼 여행을 떠나고 날개 달린 말과 안드로메다가 다가온다.

미지근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자 비로소 바람이 불었다.

시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자 비로소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혔다.

물고기야, 이것이 네가 내게 말해주었던 자유구나.

이토록 너의 계절들은 아름다웠구나.


다음 주에 각개전투 훈련을 하고 행군까지 마치고 나면 벌써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로 간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2023년 여름,


고은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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