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너는 보아라.
남들보다 많이 가질수록 고개를 숙이며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순간 누구보다 당당하여라.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은 때로는 여러 번에 걸쳐해야 하며
결핍과 상실은 감출수록 드러나는 법이지만 모두 내보이고 다닐 필요는 없다.
바라건대, 존재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저 몸과 마음을 열고 너를 스쳐가는 모든 순간을 감각하고 함께 호흡하여라.
언젠가 부재(不在) 또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과일은 썩고 새빨갛게 물든 꽃은 시들 것이다.
그러나 시고 떫고 달콤했던 그 맛과 향을 잊어버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통.
온몸을 부수고 가시덤불로 찌르는 생생한 감각은
너의 눈을 멀게 하고 혀를 마비시키겠지만
너를 단단하고 날카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 말아라.
너 또한 누군가에게 엉겅퀴 꽃이고 쓰디쓴 씀바귀고 손에 박힌 가시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
네가 길에서 찾는 것이 일신의 안녕이라면 네 시와 노래는 초라해질 것이다.
부디 멈추지 말아 다오.
그날이 오면 네가 마음 애태워 간절히 찾던 것이 이것이었노라, 네게 긴긴 편지를 써서 말해주겠다.
고맙고 미안하다.
긴긴밤 평안하여라.
고은세 씀